일본 언론들은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일제 식민지지배에 대한 개인보상은 법적으로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는 점이 명백해졌다는 쪽에 주로 초점을 맞췄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 군사정부의 다급한 처지를 이용해 그런 상황을 압박한 것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교도통신>은 “한·일 정부가 일본 식민지지배에 따른 보상 등 청구권을 일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인 피해자에 대한 개인보상 의무를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가 지기로 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강제징용 등의 피해자가 일본 정부에 개인보상을 요구하는 길은 막히게 됐으며, 앞으로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한국 쪽이 개인보상 책임을 넘겨받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앞으로 한국 정부의 교섭 태도에 대한 비판이 고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언론은 1964년 5월11일 한국 외교부가 경제기획원의 문의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개인청구권 보유자에 대한 보상의무를 지게 된다”고 밝힌 점을 대표적 근거로 꼽았다. <아사히신문>은 경제협력과 대일 청구권의 관계를 비롯한 청구권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일 정부가 협정 체결 직전까지 치열하게 격론을 벌인 점과 일본의 경제협력을 얻기 위해 초조해하는 한국 군사정부의 협상태도가 이번 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의 개인보상 책임에 대해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한국현대정치)는 “도식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겠지만, 일본군위안부와 같은 문제들이 모두 협정에 포함돼 정리됐다고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며 “당시와는 사정이 크게 달라진 점 등을 고려해 보상 문제를 법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현재 일본의 분위기가 그런 것을 수용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미야 교수는 회담에서 일본 정부 대표가 개인보상을 하겠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말로 그럴 생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급한 한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를 뻔히 알고서 일본 정부로 책임이 넘어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교섭전략의 하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 정부의 외교문서 공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카자키 소지 쓰다대 교수(일본사)는 65년 이동원-시이나 회담과 같이 일본이 고압적으로 한국에 청구권 포기를 압박하는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점에 주목하면서, 시대가 달라진 만큼 일본 정부는 이런 잘못된 협정을 맺은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 쪽의 문서 공개를 반대하지 않은 것은 개인보상에 대한 부담이 한국 쪽에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일 수교 협상에서는 이미 경제협력 방식이 합의된 만큼 커다란 파장은 없겠지만 경협자금 규모 협의에 미묘한 파장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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