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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1 18:48 수정 : 2005.01.21 18:48



■부시 2기 취임사 무슨 뜻

‘전세계 자유 확대와 전제정권의 종식’을 강조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취임사가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시는 20일 취임사에서 “전세계에서 독재를 종식시키겠다는 목표를 갖고, 모든 나라에서 민주적 운동과 제도의 성장을 지원하는 게 미국의 정책”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 “전세계 압제 아래 있는 사람들은 미국이 압제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당신들이 자유를 위해 일어설 때 미국이 함께 하리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듣기에 따라선 일부 국가의 반정부 봉기를 미국이 선동하고 지원할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이런 취임사 내용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된다. 이것이 실제로 어떻게 정책화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부시 연설과 ‘폭정의 전초기지’=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가 ‘전제국가’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연설을 콘돌리자 라이스가 언급한 ‘폭정의 전초기지’와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는 지난 18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북한, 이란, 쿠바, 버마, 벨로루시, 짐바브웨 등 6개국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했다. 라이스의 6개국 지목은 부시 취임사를 염두에 둔 계산된 발언이란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소련을 봉쇄하며 압박했듯이, 이들 6개국이 2기 부시 정권의 1차적 ‘자유 확산’ 대상이란 관측도 나온다.

3년 전 이라크와 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을 때와는 달리, 부시 행정부가 이들 6개국에 군사적 행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정부관리의 말을 빌어 “이들 6개국은 대표적인 (독재) 국가들을 지칭한 것이지 딱 정해진 그룹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부시 행정부가) 이들 국가들과 개별적인 외교관계를 배제하는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어쨌든 이들 국가들에 합법성을 부여하지 않고 반정부 운동을 지원할 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구체성 결여한 수사일 뿐” 비판도= 부시 취임사에 대한 미국언론들의 평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부시의 영감이 풍부한 멋진 연설과 현실과의 사이엔 깊은 심연이 놓여 있다. 그의 구상을 실현하기란 의회에서나 중동에서나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 신문은 “부시가 연설에서 ‘악의 축’ 국가들을 직접 지칭하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다. 이라크는 자랑할 게 별로 없고, 이란이나 북한 문제는 여전히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세계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하겠다는 부시의 말은 (지난 4년간 이집트 파키스탄 등) 독재정권들과 긴밀한 협력을 증진시켜온 과거와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적) 수사는 매끈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 케네스 로스 국장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부시가 ‘인권’이란 말 대신 ‘자유’라는 말을 사용한 건 정교하게 계산된 행동이다. 자유는 추상적인 데 반해, 인권은 부시 행정부 스스로를 옭아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카고 트리뷴>도 “집권 2기를 시작하는 부시의 고상한 취임 연설이 담고 있는 언급되지 않은 진실은 ‘말하기는 쉬우나 해내기는 어렵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 취임사 요약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수년간은 비교적 조용한 평정의 세월, 안식일의 세월이었다. 그리고는 불의 날이 찾아왔다. 우리는 스스로의 취약함을 볼 수 있었고, 그 가장 깊은 근원을 목격했다.

역사에는 증오와 분노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압제자의 허울을 드러내고, 선한 이들의 희망에 답을 해주는 유일한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 자유의 힘이다. 이제 미국의 자유는 다른 지역의 자유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됐다. 세계 평화를 위한 최선의 희망은 전세계로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세계의 폭정을 종식시킨다는 궁극적인 목표로 민주주의 운동과 제도의 성장을 추구하고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군사력을 사용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할 경우 우리 자신과 우방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무한한 것은 아니지만,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미국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우리는 이를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대담하게 사용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내 가장 엄숙한 의무는 이 나라와 국민을 새로운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리석게도 미국의 단호함을 시험하려다, 이를 실제로 확인하기도 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모든 통치자와 국가 앞에서 언제나 그른 억압과 영원히 옳은 자유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명확한 도덕적 선택을 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노예상태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폭정 또한 용납할 수 없다. 폭정과 절망 속에 사는 모든 이들은 미국이 자신들이 당하는 억압을 모른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소명…안식일…불의 날…
취임사 기독교근본주의 '물씬'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알려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20일 집권 2기를 시작하는 취임사에서도 종교적 색채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지난 2000년 첫번째 임기 취임식 때 사용했던 ‘부시 가문의 성경책’에 이날 다시 손을 얹고 선서를 한 부시 대통령은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소명’(신이 부여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찾아온 잠시 동안의 평화는 ‘안식일’로 표현했고, 9·11 동시테러는 이런 평화를 앗아가 버린 ‘재앙(불)의 날’로 묘사했다.

그는 압제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은 이유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이 “천상과 땅의 창조자의 이미지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로써 “미국의 사활적 이해와 미국인의 가장 굳건한 신념은 이제 하나가 되었다”고 강조했다. 압제란 “언제나 그른 것”이고 자유는 “영원히 옳은 것”이라는 선과 악을 가르는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기준 역시 그의 종교적 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이를 두고 인터넷 매체 <사이버캐스트뉴스>는 20일 한 반부시 시위 참여자의 말을 따 “부시 대통령은 ‘악의 상징’ 운운해가며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들먹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흥분된 '대관식'속 반부시 시위도
엘지전자 PDP TV 20여대, 현장 생중계 '눈길'



▲ 조지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등으로 분장한 시위자들이 20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 인근 내셔널 프레스 빌딩 앞에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수감자 학대사건을 풍자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워싱턴/연합


부시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낮 12시 국회의사당 광장에 마련된 행사장에서 렌퀴스트 대법원장에게 취임 서약을 하는 것으로 제43대 2기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취임식을 생중계한 미국 방송들은 “온 국가를 위한 위대한 순간”, “너무 감격적”, “이상적이고 기품있는 영부인” 등 과장된 어법과 흥분된 목소리로 ‘대관식’ 장면을 상세히 전하면서 “이 순간만큼은 정치평론가들도 입을 다물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일부 방송은 ‘상업적 쇼 기법이 정치행사에 완벽하게 적용된 사례’이고 ‘취임식 행사에 4천만달러가 소요됐다’며 식장 근처에서 벌어진 부시 반대 집회도 소개하는 등 화려한 취임식의 이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전 시위대는 관처럼 생긴 종이 박스를 들고 이라크에서 사망한 미군들을 기리는 한편 일부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 도중에 반부시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평화운동 단체인 ‘코드핑크: 평화를 위한 여성들’은 뉴욕과 캘리포니아 지역구의원들로부터 취임식 참석 티켓을 얻어 참석한 뒤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 시내에서는 시위대가 ‘역대 최악의 대통령’ ‘4년 더: 신이여 미국을 도우소서’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과 또 이라크전 사망자들을 의미하는 관처럼 생긴 종이상자 수백개를 들고 행진했다. 일부는 성조기를 불태우기도 했다.

◇…베니타 페레로-발트너 유럽연합 대외관계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2기 취임을 환영하는 한편 부시 행정부가 향후 중동 평화와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프랑스와 함께 이라크전 반대 운동을 주도했던 독일의 일간지 <슈탄다르트>는 부시 대통령이 2기 취임을 맞아 마음을 고쳐먹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훈수했다. 신문은 사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아직 이라크에서 실수를 했다는 점을 인정하려는 명백한 신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설은 또 “세계는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에서 교훈을 얻어 이란 문제를 다루는 데 적용하기를 조용히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오스트리아 신문 <프레세>도 세계는 부시 행정부가 향후 어떻게 이란과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 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취임행사를 하는 동안 한국 엘지전자의 피디피 티브이가 공식 중계 텔레비전으로 선정돼 행사 화면을 생중계해 눈길을 모았다. 이날 취임식장 주변에는 엘지전자의 50∼60인치급 피디피 티브이 20여대가 귀빈석 등 곳곳에 배치돼 먼 곳에서 단상을 잘 볼 수없는 시민들에게 취임선서 등 주요 장면을 현장 중계했다. 또 이어 열린 리셉션과 축하연회장 등 주요 행사장에서도 주요 인사들의 움직임 등 현장 화면을 참석자들에게 전달했다. 엘지전자가 부시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 피디피 티브이를 공급한 것은 부시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일본 등지의 주요 전자회사들을 물리치고 선정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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