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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26 20:06 수정 : 2005.01.26 20:06



온갖학대에 일상복귀해도 ‘악몽’

30%는 소녀벙사…금지 국제조약 무용지물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전쟁터의 인권유린 현장 한가운데에 방치돼 있다. 이를 막기 위한 국제 조약들은 무용지물이다.

지난 14일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스리랑카 반군 ‘타밀엘람해방호랑이’가 미성년 병사를 1천명 이상 모집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03년 타밀엘람해방호랑이가 유엔아동기금, 스리랑카 정부와 협약을 맺어 1천명에 이르는 미성년병들을 모두 풀어주고는, 그 뒤 다시 강제로 1천명 이상의 미성년병을 모집했다”고 비판했다. 또 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는 지난달 20일 모잠비크 미성년병 출신 두 청년의 삶을 소개하며, 미성년 병사들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더라도 악몽과 가난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성년병 실태 =영국 군사전문지 〈제인스인텔리전스리뷰〉 최신호와 국제 인권단체 ‘미성년 병사 동원 중지를 위한 연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전세계적으로 18살 미만 미성년병은 약 30만명에 이른다. 세계 분쟁지역 75%에서 반군과 정부군 모두 어린이들을 동원하고 있다. 전투에 참가하는 미성년병의 80%는 15살 미만이고, 18%는 12살 미만이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프리카에서는 미성년병의 평균나이가 13살에 불과하다.

또 이들 가운데 30%는 소녀들이며, 모두 55개 나라에서 전투에 참가하고 있는 소녀들이 확인됐다고 〈제인스인텔리전스리뷰〉는 전했다.

심각한 인권유린 =“어느날 한 소년이 도망가다 잡혀왔어요. ‘그들’은 우리에게 막대기로 그를 죽이라고 시켰죠. 그 소년은 저와 한동네 살던 애였고, 내가 명령을 거부하자 그들은 나에게 총을 겨눴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소년을 죽이고, 소년의 피를 우리 몸에 발랐습니다. 지금도 그 소년이 꿈에 나타나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우간다에서 반군에게 납치돼 반군이 된 수잔(16)은 ‘미성년 병사 동원 중지를 위한 연대’와의 인터뷰에서 고백했다.

14살에 과테말라군에 징집된 에밀리오는 “이유도 없이 어른 군인들에게 계속 두들겨 맞았고, 영양부족 상태에서 우리 몸보다 더 무거운 짐을 매일 날라야 했다”고 말했다. 소녀들은 여기에다 성폭력 고통까지 당한다. 대부분 소녀병들이 모집 당시 집단으로 성폭행당하고, 군생활 내내 남자들로부터 성적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고 ‘휴먼라이츠워치’가 피해사례들을 열거하며 지적했다.

미성년병 동원 배경 =미성년병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반군이든 정부군이든 성인 병사들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어린이들을 납치하거나 감언이설로 꾀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데려간다. 미성년병은 무기를 들고 직접 전투에 참가하고 지뢰나 폭발물 설치, 염탐, 밀사, 짐나르기, 요리나 청소 같은 비전투 노동도 한다.

‘미성년 병사 동원 중지를 위한 연대’ 보고서를 보면 어린이들은 △전쟁으로 가족이 죽거나 흩어져 혼자 생계를 꾸려가야 하거나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해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강한 힘을 갖고 싶어 하거나 △이념·정치적 이유나 가족 전통 등을 내세워 집에서 강요하는 경우 등 여러가지 이유로 전쟁터로 내몰린다. 소녀들은 가정내 폭력과 과중한 가사노동, 강요된 결혼 등을 피해 전투부대에 들어간다. 여기에 최근 무기가 가볍고 단순해져 어린이들이 충분히 다룰 수 있게 된데다, 미성년병은 비용도 적게 들어 전투지역에서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고 〈제인스인텔리전스리뷰〉는 지적했다.

국제적 대응책 없나 =국제적으로 미성년 병사 문제를 놓고 도덕적 비난이 거세게 일면서, 여러 국제조약과 법들이 생겼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무력 분쟁에서 18살 미만은 쓰지 못하게 정한 ‘무력분쟁에 가담하는 어린이에 관한 어린이 권리협약 선택의정서’가 2000년 5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돼, 2002년 2월 의무화됐다. 2003년 12월까지 67개 나라가 비준했다.

‘어린이 권리에 관한 유엔 위원회’에서는 각 나라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1999년부터 무력분쟁 지역에서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은 15살 미만 어린이를 모집하는 것을 전쟁범죄로 정의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협약’ 182조도 분쟁지역에서 18살 미만 어린이를 군인으로 동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과 법 사이의 거리는 멀어 지금도 여전히 많은 어린이들이 전쟁터로 동원되고 있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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