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31 19:51
수정 : 2005.01.31 19:51
지난주 미 국방부는 ‘해군 1호기’ 사업자를 선정 발표했다. ‘해군 1호기’란 대통령 전용 헬기를 말한다. 우리에게야 큰 관심거리가 아니지만, 미국에선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지난해 4월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10개월 가까이 연기됐다. 우리나라의 규모가 큰 국책사업처럼, 여기서도 여러 정치·외교적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업은 미 대통령 전용 헬기 UH-60을 새 헬기로 교체하는 작업이다. 모두 23대의 편대를 교체하는데 드는 총비용만 61억달러에 이른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래 줄곧 대통령 전용 헬기를 공급해온 시코르스키의 신형 헬기 VH-92와, 록히드마틴을 주축으로 한 미-유럽 공동 컨소시엄의 US-101이 경합을 벌였다.
1월28일 오후 5시에 국방부의 공식발표가 있었다. 사업권이 록히드마틴으로 갔다는 소식에 코네티컷의 시코르스키 공장에 모여 있던 수백명의 종업원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 사업을 잃으면 당장 7백개의 일자리가 날아간다고 한다.
이번 사업은 여러 모로 관심을 끌었다. 시코르스키는 “100% 미국에서 제작한 헬기”라는 걸 강점으로 내세웠다. 일자리 아웃소싱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는 터라, 팀스터(트럭운전사노조)를 비롯한 수많은 노조가 시코르스키를 지지했다.
록히드마틴은 영국·이탈리아 합작회사와 손을 잡았다. US-101은 이탈리아 회사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의 EU-101을 개량한 것이다. 영국과 이탈리아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도운 유럽의 일등공신들이다. 여기에 부시 고향인 텍사스의 헬기 제조업체 벨이 컨소시엄에 포함됐다.
존 영 해군성 차관보는 “선정과정에 어떤 정치적 압력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워낙 양쪽의 로비전이 치열해 여러 얘기들이 꼬리를 물었다. 시코르스키의 한 종업원은 “우리(코네티컷)가 대선에서 존 케리를 밀었기 때문에 탈락했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래도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이나 정치인은 아직 없다. 선정과정에서 외압이나 금품이 오고가지 않았다면, 누굴 뽑느냐 하는 건 결국 정책적 판단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새로 만들어지는 헬기는 2009년부터 공급된다. 부시 대통령이 퇴임한 직후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은 종종 후임 행정부로 미룬다. 당장 쓸 것도 아닌데 굳이 논란에 휩싸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했어야 할 청와대 전용 헬기 사업자 선정을 지금까지 미룬 게 그런 사례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스코르스키의 S-92와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의 EH-101이 경합 중이다.
지금 대통령이 결정하고 다음 대통령이 그 헬기를 타는 것도 보기에 괜찮은 것 같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