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01 18:53
수정 : 2005.02.01 18:53
[세계를 보는 눈]
“완벽한 성공”이라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흥분섞인 표현처럼, 미 행정부와 언론들은 이라크 ‘자유민주 선거’의 성공을 반기고 있다. 이제 기정사실처럼 된 “성공”의 근거는 이라크인들이 (잔인한) 저항세력들의 위험에 용감히 맞서 투표소로 나왔고, 그 결과 투표율이 60%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0일 오후 2시께 이라크선관위원 아델 알 라미는 기자회견에 나와 투표율이 72%라고 발표했고 이는 〈시엔엔〉 등을 통해 전세계로 방송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니파 거주지역에서는 투표소의 3분의 1만이 문을 열었고 그나마 문을 연 투표소에도 찾아오는 유권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대해 질문이 쏟아지자 그는 “투표율이 매우 낮은 최소 2개 지역은 빼놓고 계산한 수치”라고 물러섰다가 결국 “추측에 의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투표율이 60%로 추산된다는 선관위의 발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투표율은 60%에 못미친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알자지라〉는 바그다드에서도 실제 투표율은 매우 낮았다고 전했다.
사실 이번 선거는 정확한 투표율 집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라크 정부도 미 점령당국도 선거를 위한 인구조사를 하지 못했으며, 투표권이 있는 18살 이상 인구가 몇명인지도 분명히 내놓지 못했다. 유권자 등록도 선거인 명부도 없었고, 후세인 통치시절 유엔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식량을 배급해주던 명부에 의지해 선거가 치러쳤다.
주로 미국 언론을 통해 전세계로 전해진,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이라크인의 일부일 뿐이다. 약 5200곳의 투표소 중 언론 취재가 ‘허용’된 곳은 이라크 정부와 미군이 정해준 5곳뿐이었다. 4곳은 이번 선거를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 시아파 도시에 있었고, 나머지 한곳은 수니파 부유층 거주지였다.
냉정히 따져 보면 이번 선거 실시를 강력히 요구해온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이라크 인구의 약 8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볼 때 투표율 60%는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1967년 9월4일 〈뉴욕타임스〉의 제목은 “미국 베트남 선거에 고무되다:베트콩의 테러위협에도 불구하고 투표율 83%”였다.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 대통령선거에서 “베트콩의 선거 방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베트남인들이 투표소로 향했다”며 미국의 베트남 개입정책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베트남인들이 결코 미국 점령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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