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단순히 수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복잡한 현실은 수치화를 통해 압축적 상징으로 거듭나면서 현실에 다시 강력한 자장력을 발휘한다. 2019년 지구촌 사건을 대표하는 5개의 숫자를 골랐다. 홍콩 시민 ‘200만명’은 민주화 시위에 붙을 붙였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은 칠레의 불평등 시위를 촉발했다. 1년 반 동안 세계 경제의 뇌관이었던 미-중 무역전쟁은 ‘526일’ 만에 1단계 합의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역사상 ‘3번째’로 하원 탄핵안 가결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세계 정치 지도자들을 꾸짖었다.
50원 오른 교통요금에 불평등 인내심 폭발
단돈 50원이 문제였다. 지난 10월 칠레 정부가 산티아고의 지하철 요금을 30칠레페소(약 50원) 올린 것을 계기로, 서민층의 쌓였던 분노가 폭발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가 취소될 만큼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11월에는 미국의 경제 제재에 놓인 이란 정부가 빈곤층의 휘발유 보조금을 삭감하면서 유가 부담이 50%나 폭등한 게 거센 반정부 시위에 불을 댕겼다. 인상 폭은 1리터당 5천리알(약 170원) 남짓이었다.
‘50원’이나 ‘50%’는 숫자에 불과했다.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와 불평등, 엘리트 지배집단의 권력 및 자원 독점과 반민주적 통제가 인내의 한계를 넘은 게 시위 사태의 본질이다. 올해 지구촌은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로 들끓었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아시아(홍콩·인도 등), 남미(칠레·브라질·볼리비아 등), 유럽(스페인·프랑스·영국 등)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이라크·이란·레바논 등 중동 시위는 제2의 아랍의 봄을 방불케 한다. ‘기후변화 대응’ ‘젠더 평등’ 같은 지구적 과제도 전세계의 연대 시위를 이끌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세계는 불평등을 확대한 세계화와 신기술의 부정적 영향과 씨름하고 있다”며 각국에 “모두를 위한 사회·경제 시스템의 실질적 작동”을 촉구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200만명 구름인파…송환법 반대가 촉발한 홍콩시위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추진 반대로 시작된 홍콩 시위가 7개월째를 향해 가고 있다. 지난 6월9일 첫 시위에 100만명, 16일엔 200만명이 구름처럼 모였다. 송환법은 철회됐다. 2014년 여름을 달궜던 ‘우산혁명’ 좌절 이후 숨죽이던 홍콩 시민사회가 부활의 날갯짓을 한 한해였다.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시민사회 내부에서조차 “당국이 밀어붙인다면 막아낼 자신이 없다. 공세적으로 민주주의를 확장하려는 게 아니라 방어적으로 지켜내려 노력 중”이란 말이 나왔다. 하지만 홍콩 시민은 집요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경찰의 유혈·강경 진압과 맞물려 광범위한 민주화 요구 쪽으로 진화해갔다.
11월24일 지방선거(구의회)에서 친중 진영에 궤멸적 패배를 안긴 홍콩 시민들은 여전히 ‘시위 중’이다. 행정장관 직선제를 비롯해 ‘경찰 폭력’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벼르고 있다.
지난 13일 홍콩 입법회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6월 이후 열린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는 줄잡아 900여차례에 이른다. 여기에 동원된 경찰 병력은 1만1천여명이다. 이들이 6개월(6~11월) 동안 챙긴 초과근로수당은 9억5천만홍콩달러(약 1421억원)로, 1인당 8만6363홍콩달러(약 1291만원)꼴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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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미 하원서 탄핵받은 대통령된 트럼프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앤드루 존슨(1868년), 빌 클린턴(1998년)에 이어 미국 역사상 ‘3번째’다. ‘당 대 당’ 대결을 방불케 하는 듯,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의 표심은 찬반 양쪽으로 쫙 갈렸다.
러시아 게이트, 인종차별 발언 등 숱한 논란 속에도 무사히 버텨왔던 트럼프를 탄핵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정부 내부고발자의 ‘폭로’였다. 트럼프가 7월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과 한 33분 동안의 첫 통화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고리로 민주당 ‘맞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뒷조사를 압박했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다.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을 두고 주판알을 튕기던 민주당이 탄핵 조사에 나서면서 트럼프의 ‘대통령직’ 권력 남용을 보여주는 측근·정부 관계자들의 증언·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트럼프는 ‘마녀사냥’이라는 트위트 폭탄을 쏟아내며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탄핵 찬반 여론은 50 대 50으로, 하원 표결 결과와 마찬가지로 팽팽히 갈라서 있다. 내년 초 상원에서 진행될 탄핵 심판은 공화당이 다수인 만큼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탄핵에 대한 진짜 민심은 11월 대선 결과를 통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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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기후투사 툰베리 ‘청소년 권력’ 등장을 알리다
모든 것은 ‘16살’ 소녀로부터 시작됐다. 2018년 8월 스웨덴의 작은 교실에서 ‘기후를 지키기 위한 학교 파업’ 주동자로 나섰던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 긴급 행동’은 삽시간에 유엔 무대에까지 정치 이슈로 번져 타올랐다.
지난 8월 이후 외신에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툰베리 기사가 올랐다. 8월에는 유럽에서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횡단해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12월엔 다시 범선을 타고 5000㎞를 항해한 끝에 유럽 땅에 돌아왔다. 그가 ‘기후 행동’ 여정에 오를 때마다 생중계되고, 이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트(팔로어 6천만명)보다 툰베리의 트위트(360만명)가 더 빠르고 더 넓게 국제뉴스로 곧바로 타전된다.
칠레 반정부 시위로 유엔 기후총회 장소가 스페인 마드리드로 바뀌자 툰베리는 “나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며 임박한 기후 파국을 빗대어 절박하게 호소했고, 마드리드로 출발한 날에 짧게 남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소감은 인류 거처를 지키자는 은유로 해석됐다. 16살 투사의 ‘기후 항해’에 전세계가 환호했고, 정치 지도자들은 툰베리의 표적이 될까 진땀을 빼야 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인물’ 툰베리에게 붙은 제목은 ‘청소년 권력’이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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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일 만에 미-중 무역전쟁 ‘잠정 휴전’
2018년 7월6일, 미국이 중국을 특정해 관세를 매겼다. 340억달러(약 39조6천억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 818종에 25% 관세가 추가됐다. 중국도 바로 같은 금액의 미국산 제품 545종에 25% 보복 관세를 매겼다.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이다.
2018년 12월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업무 만찬을 하며 90일 동안 신규 관세 부과를 멈추고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이후 1년여 동안 베이징과 워싱턴을 오가며 1~5월 모두 7차례 고위급 협상이 열렸지만 양쪽은 근본적인 인식차를 좁히지 못했다. 미국이 정면으로 겨누는 것은 국가가 주도하는 중국의 경제발전 모델이었고, 중국은 이를 ‘체제 위협’으로 간주했다.
지난 13일 미-중은 무역전쟁이 벌어진 지 526일 만에 ‘1단계 무역 합의’를 타결했다. ‘잠정적인 휴전’일 뿐이다. ‘2단계 합의’를 위한 협상이 시작되면,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중국은 동맹도 친구도 아니다. 중국은 우리를 이기고, 우리나라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1년 9월21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뿌리가 깊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inhwa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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