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3 21:26
수정 : 2005.03.1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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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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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구게 될 드라마의 예고편이 개봉됐다.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2005년도 판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 교과서의 역사 왜곡은 결코 2001년도 판에 뒤지지 않는다.
‘산케이 논리’ 안팍 주고받기
특히 한반도 역사에 관해 악의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의 강화, 자존자위를 위한 한국 강점의 불가피성,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 촉진, 민중의 피해상의 은폐와 왜곡 등으로 일관하고 있다. ‘세련된 개악’이라 불릴 정도다. 덕분에 ‘한-일 우정의 해’라는 슬로건이 무색해질 정도로 두 나라 관계는 2005년 초입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특별히 올해에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있다. 바로 후소사판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급성장하고 있는 우익들의 움직임이다. 특히 우리 내부의 사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한-일 우익연대’ 형성이 본격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쟁점으로 등장했을 때, 한국 보수진영의 일부는 ‘역사보다는 경제’라는 논리로 포장된 국익론을 거론했다. 2001년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과거사 청산 노력을 ‘색깔론’으로 덧씌우기 시작했다. 당시 한 중앙 일간지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인해 확인된 것은 일본 국민은 이미 우경화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소수 좌파나 교원노조와 연대할 수는 없다”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논리는 <산케이신문>에도 등장한다. 이 신문은 지난해 3월 한국에서 통과된 친일청산을 위한 특별법을 ‘반일특별법’이라 이름짓고, “한국은 ‘일본 지배의 유산’을 활용하면서 발전한 진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일본을 계속 거부해온 북조선에 대해서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사설에 썼다.
지난해 10월 중학교 교과서 <한국근현대사>(금성출판사)를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자 <산케이신문>은 이 논리를 재연했다. 사설을 통해 “미·일을 부정적인 존재로 보고 북한에 너그러운 역사교과서로 도대체 어떤 다음 세대를 키우려고 하는 것일까”라고 물었다. 이 사설의 제목은 ‘한국 역사교과서 역시 자학사관은 곤란하다’였다.
이 사설이 등장한 때를 전후해 한국의 이른바 ‘뉴라이트’의 입에서 ‘자학사관’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북한 혐오론이 한·일 양국의 우익들을 연결하는 가교 노릇을 했다. 북한을 싫어하는 양국 우익의 공감대는 두 나라 내부에서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다.
후소사교과서 논쟁이 시험대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발언을 지지하는 국내 세력이 만만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 잡지에 등장하는 한국 우익들의 입에서 한반도 강점이 부당하다는 논조가 사라진 지도 오래다. 이들의 반북 논리는 그동안 암약하던 한국내 ‘신친일파’의 본격적인 커밍아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한·일의 우익들은 한반도 강점과 지배라는 역사적 사실에 관해 한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감내해 낼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인가를 줄곧 탐색해 왔다. 2005년도 후소사 교과서는 그 잣대가 될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올해 역사교과서 파동의 관전 포인트다.
후소사 교과서의 역사왜곡이 빚어낸 2001년의 ‘역사전쟁’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일조했다. 동시에 우리 안에 자라고 있는 다양한 일본관의 존재를 확인하게 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을 두개의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라는 고정된 틀로 이해해서는 사태의 복잡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념동맹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탈국경적 역사관’의 등장에 주목해야 한다. 한·일 시민사회의 평화·양심세력에 맞선 한·일 우익들의 기세를 주의깊게 봐야 한다. 한-일 우익연대의 출현이 올해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인가? 그 시험대에 우리는 서 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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