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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31 20:22 수정 : 2005.03.31 20:22

일본 보수우경화에 온건파 설 곳 없어

일본 외무성내의 대표적인 대북 온건파로, 집권 자민당과 정부 내 대북 강경파들로부터 비난과 견제를 받아 온 다나카 히토시(58·사진) 심의관이 끝내 물러날 모양이다.

<요미우리신문>은 31일 다나카 심의관(차관보급)이 오는 여름으로 예정돼 있는 외무성 정기 인사이동 때 퇴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외무성 소식통의 말을 따, 그의 동기인 야치 쇼타로 전 관방부 장관보가 지난 1월 외무사무차관에 취임했기 때문에 올 여름 인사 때 중국 또는 러시아 대사로 나가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본인이 고사했다고 전했다. 그는 “조직을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하면 교수로 와달라는 제의를 도쿄도내 유명 사립대학으로부터 받았다는 소문도 들린다.

원래 사무차관 자리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대북정책 주요 실무담당자로 2002년 9월 고이즈미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을 성사시킨 다나카 심의관이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인 납치자 ‘가짜 유골’ 소동이 벌어지고 일본사회의 대북여론이 한층 더 악화되면서 야치가 기용됐다. 야치는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당시 대북 강경몰이를 주도한 일본 정계 실세가 간판 보수우파 정치인인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이며, 다나카를 밀쳐내고 야치를 앉히는 데는 아베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우파들이 대북 강경몰이 재료로 삼았던 ‘가짜 유골’문제는, 일본쪽의 문제 제기 자체가 가짜라는 북한 쪽 주장과 더불어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일본 외무성의 전략가로 꼽히는 그는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 시절 미군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반환협의에 참여했고, 아시아대양주 국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북한 핵 위기 때는 이태식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현 차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함께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티콕·TCOG) 대표로 6자회담 문제 등 한반도 긴장완화 방안을 협의했다.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적인 방북을 성사시킨 일등공신도 그였다.

고이즈미의 대북 협상정책에 반대하던 일본 보수우파는 다나카의 대북 접촉창구, 이른바 ‘미스터-X’의 정체를 밝히라며 ‘지시받고 움직이느냐’는 등의 질타와 함께 친북인물이라는 비난까지 퍼부었다. 대북 강경파 쪽에 선 <요미우리>는 31일 그가 “북한 고관과 비밀외교를 거듭했고” “자민당 등으로부터는 북한에 너무 유화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보수우파들은 이에 앞서 러시아와 분쟁 중인 홋카이도 북쪽 4개 섬(이른바 북방영토) 중 러시아가 예전에 약속한 2개 섬부터 먼저 돌려받자는 ‘실용노선’을 추구한 외무성 안팎의 온건파들도 몰아낸 바 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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