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6 20:26
수정 : 2005.01.16 20:26
전력·가스 등 ‘생명선’ 방재속 빈틈도
17일은 6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본 한신(오사카·고베)대지진이 일어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국토 면적은 전세계의 0.25%에 지나지 않지만 규모 6 이상의 강진 발생비율이 22.9%에 이르는 ‘지진대국’ 일본은 이 참사를 교훈 삼아 관측·대비·경보·구호·복구의 방재체제 전반을 재정비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니가타현을 중심으로 한 주에쓰 지진과 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가 발생하면서 일본의 방재능력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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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도쿄 중심부를 지나는 국도 1호선 히비야 구간의 지하 40m의 지점에서 공동구 건설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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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선을 지켜라”=지난 13일 오전 도쿄 중심가 도라노몬 역 주변 지하 40m 지점에선 국도 1호선 공동구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름 7.5m 정도의 굴착기계는 굉음을 울리며 무게가 5천t인 도쿄타워도 들어올릴 만큼 강력한 힘으로 땅을 파고 흙과 물을 뽑아냈다. 이어 빈 공간에 너비 60~120㎝, 두께 30㎝의 철근콘크리트·주철 판을 조립해 터널을 만들었다. 24시간 작업을 통해 직선구간은 하루 10m, 까다로운 곡선구간은 5m 정도씩 앞으로 나아갔다. 1㎞의 공동구에 70억엔의 거액이 들며, 도쿄 시내를 지나는 국도 161㎞ 가운데 65%인 106㎞에서 공동구가 완성됐다.
1km당 70억엔 투입해 도심 땅밑에 터널
발생 4분만에 대책반…자원봉사 체계화
낡은 목조건물·느슨한 위기의식 ‘숙제’로
공동구는 전력선·가스관·통신케이블·상하수도관 등 ‘생명선’으로 불리는 기반설비를 모아두는 곳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도시미관이나 도로 굴착공사 감소를 위해 공동구를 만드는 반면, 일본에선 방재에 무게를 둔다. 지진 발생을 막을 수는 없지만 수도·전기·통신이 두절되거나 가스관이 터져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막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신대지진 때 생명선이 끊겨 큰 대가를 치른 뒤 공동구 건설에 탄력이 붙게 됐다. 고베 주민들에 대한 최근 조사에서도 첫번째 지진 대비책으로 생명선 보호가 꼽혔다. 아사코 가쓰히사 도쿄국도사무소 공동구 과장은 “한신대지진과 같은 강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 초기대응 강화=지난해 10월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 때 총무성 위기관리센터에 대책반이 설치된 게 지진 발생 4분 뒤, 피해규모 예측이 나온 것은 6분 뒤였다. 한신대지진 당시 피해보고가 들어오는 데만 6시간이 걸리는 등 늑장대응으로 피해가 확대됐다는 거센 비판에 따라 가장 먼저 개선된 것이 초기대응 강화다. 일본 정부는 1996년부터 지진피해 조기평가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피해신고를 받은 뒤는 이미 늦다는 판단에 따라 진도 4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시스템이 자동 가동돼 30분 안에 지역단위로 인명피해와 건물붕괴에 대한 예측을 내놓아 신속한 초기대응이 가능하다.
훨씬 정밀해진 지진 예측 연구와 관측망도 빼놓을 수 없다. 수도권을 비롯해 동해·동남해·남해 등 권역별로 편성된 전문조사회가 주요 활성단층대 별로 지진발생 확률과 피해 예상규모 등을 산출해 수시로 발표한다. 더욱 촘촘하게 배치된 지진계망은 짧은 시간 안에 지진의 충격을 정확하게 파악해낸다.
■ 달라진 복구 체제=지진 복구 현장에서 다른 지자체 직원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진이 전국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지자체끼리 제휴해 지진피해가 발생하면 곧바로 노련한 구조대원을 보내는 ‘재해 품앗이’가 활성화돼 있다. 소방서·병원의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재해거점병원을 지정하는 등 응급대책지원시스템도 가동되고 있다.
특히 한신대지진은 ‘재해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정착된 계기가 됐다. 일본에만 1200개가 넘는 재해 구조단체가 생겨났다. 당시는 많은 사람들이 지원에 나선 반면 체계적이지 못해 효율적 복구가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복구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는 작업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등 노하우도 상당히 발전했다. 또 엄청난 사상자가 난 한신대지진을 거치면서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잃은 피해자의 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도 정비됐다.
■ 여전한 빈틈=한신대지진 희생자의 사인 가운데 80% 이상이 주택붕괴에 따른 압사와 질식사였다. 이후 건물의 내진 기준이 대폭 강화된 것은 물론 일부 지자체에선 낡은 목조주택의 내진화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도권에만 내진성이 떨어지는 주택이 510만채나 된다. 심지어 내각부와 재무·농수성 등 중앙관청마저 내진진단 때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손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진해일 발생 우려가 있는 해안지역의 제방 1만5천㎞ 가운데 내진성이 확인된 것은 4400㎞에 지나지 않는다.
주에쓰 지진은 방재 대책이 대도시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줬고, 재해 통신망이 끊겨 고립된 마을들도 나타났다. 일상적으로 방재훈련을 하지만 주민들의 위기의식 또한 불충분한 실정이다. 2003년 5월 미야기 앞바다 지진 때 해일을 우려해 대피한 주민은 1.7%에 지나지 않았다. 글·사진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고베, 상처딛고 첨단 방재도시로
‘이웃의 소중함’깨달음 남아
한신대지진의 상징은 635m 구간의 교각이 부서지면서 옆으로 누워버린 한신고속도로다. 이 고가도로는 내진성을 한층 강화한 최첨단 도로로 변신해 지금은 하루 13만대 이상의 차량이 지나다니고 있다. 지진으로 대부분의 점포와 주택이 무너지거나 불타 폐허나 다름없었던 고베시 나가타구 상점가와 주변지역도 재개발을 통해 초고층건물이 즐비한 번화가로 변신했다.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고베는 지진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기반시설과 주택 등이 복구됐고, 대참사의 희생을 딛고 가장 앞서가는 방재도시로 거듭났다.
그렇지만 생활경제나 정신적인 면에서 회복은 더딘 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해마다 고베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0~50%가 고용·수주, 수입, 지역산업 등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다. 고베의 인구규모는 최근에야 지진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생산규모는 다시 그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일본 경제 전체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있지만 재해지역의 고통은 한층 심한 것이다.
정신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고 대답한 사람도 여전히 15~30%에 이른다. 중고년층을 중심으로 이웃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은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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