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
헌혈증 제도를 폐지한다고? |
헌혈자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불량 혈액을 유통시키고, 각종 비리마저 터져 나오는 적십자사, 이를 알면서도 수수방관해 온 정부가 결국 헌혈률을 떨어뜨리는 주범들인데, 다시 아무 대책 없이 헌혈증 폐지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것은 매우 우려할 일이다.
얼마 전 몇몇 언론은 대한적십자사가 2009년까지 헌혈증 제도를 폐지하는 방침을 세웠다는 기사를 실었다. “현재의 헌혈증은 제3자가 이용해도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서 헌혈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적십자사는 또 내년부터 세 번 이상 헌혈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헌혈증서 대신 카드를 발급하는 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2007년과 2008년 사이에 개인별 헌혈카드를 발급하는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의 이면에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헌혈환부 예치금(헌혈증서 한장당 2000원을 책정하여 환자들이 수혈 때 헌혈증서를 내면 본인이 내는 금액을 감면하는 데 쓰임)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 이 헌혈증을 일부의 헌혈자들이 사고판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도 현재의 헌혈증서 제도는 일종의 ‘혈액보관증서’처럼 운영되기 때문에 본래의 헌혈 정신에 위배된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번 적십자사의 불량혈액 유통 문제로 적십자사를 고발하고 혈액제도 개선안을 정부에 냈을 때도 우리는 분명히 장기적으로 헌혈증서 제도의 폐지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몇가지 전제를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헌혈율은 더 떨어지고,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들은 경제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첫째, 이를 시행하려면 환자(수혈자) 수혈비용에 대한 공적 책임을 더 강화하는 정책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 보도된 것처럼 개인별 카드를 발급하고 헌혈증서를 폐지하면 당연히 헌혈증 증여는 없어질 것이다. 또는 헌혈증이나 개인카드를 두고 선택하게 해도 결과는 아마 엇비슷할 것이다. 개인 카드제는 헌혈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강화한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헌혈증의 발급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헌혈자들이 기증한 헌혈증서로 수혈을 받아왔던 환자들일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들은 급박한 사고를 당했거나 백혈병·암과 같은 고액의 치료비를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수혈비용 전액면제 등과 같은 정책적 대안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둘째, 헌혈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제도화해야 한다. 헌혈증 폐지 방침 보도와 관련하여 많은 헌혈자들은 그동안 “혈액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다고 생각하면서(헌혈도 하고 증서도 기증하고) 헌혈을 했는데, 이제 헌혈증서가 폐지되면 헌혈을 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헌혈은 증서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봉사’이고 누군가 헌혈을 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이들은 생명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혈자들의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그간 정부와 적십자사가 헌혈자들의 안전과 권리 등을 방치하면서 혈액 관리사업을 진행해온 것에 대한 불신이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적십자사는 헌혈자들을 ‘봉’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할 정도로 아무런 정책이 없었다. 수많은 헌혈자들의 안전과 권리가 그간 어떤 방법으로 보호되어 왔는가? 헌혈하면 배급받듯이 주는 빵과 우유로 대신해온 것은 아닌가? 헌혈자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불량한 피를 유통시키고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는 적십자사와 ‘나몰라라!’ 방관해온 정부가 결국 헌혈률을 떨어뜨린 주범들인데, 다시 아무 대책 없이 헌혈증 폐지 이야기가 솔솔 나오는 것은 매우 우려할 일이다. 정부와 적십자사는 헌혈률을 더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싶은가? 아무리 봐도 그것을 목표로 삼고 일하고 있는 듯하다. 나만의 생각이 아닐 터이다.
강주성/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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