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6 17:34
수정 : 2005.01.16 17:34
우리는 어떤 일을 계기로 지난 일들과 주변을 돌아보곤 한다. 가슴 훈훈한 미담이 소개돼 주인공과 그 주변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사건이나 사고를 통해 그동안 무심했던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일이 더 많다.
지난 8일 경북 칠곡군에 있는 장갑 제조공장 시온글러브에서 불이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다 타버린 건물 모습, 사상자에 대한 소식은 바쁜 일상에 잊고 지냈던 장애인들에 대해,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경북에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이 일하는 회사가 있구나 하고 ‘발견’하기도 하고, 그 회사가 많은 지원금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 장애인을 고용한 ‘의도’에 의구심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우리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화재 후유증은 사고 수습에 지친 회사와 그 회사에서 일하던 장애인, 그리고 그 가족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시온글러브는 장애인 고용으로 그 이름이 제법 알려진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 대표는 1992년 회사 설립 때부터 장애인 고용에 대한 꿈을 가졌다가 1998년 3명을 시작으로 현재는 장애인 79명을 고용하고 있다. 2002년에는 장애인 고용에 기여한 바가 인정되어 노동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시온글러브에서는 중증장애인 69명이 장갑포장이나 장갑결속 등 비교적 쉬운 직무에 배치되어 자신의 구실을 다하고 있었다. 설립 이후 매출이 신장돼 온 시온글러브는 중증장애인의 고용도 꾸준히 늘려갔다. 사업장을 새로 만들거나 생산설비를 들여 놓을 때도 장애인 배치 계획을 반영했고 이런 배려로 중증장애인들이 일하기에 좀 더 편리한 여건이 조성됐다. 이번 불로 다 타버린 건물 역시 중증장애인들이 일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편의시설을 갖춘 건물이었다.
장애인 고용에 대해 획기적인 전환점을 찾지 못하고 중증장애인들이 일할 터전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시온글러브의 화재는 많은 중증장애인들의 일터가 타버렸다는 걸 의미한다. 당장은 사상자 문제와 회사의 손실 등을 잘 수습해 나가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 많은 중증장애인들의 일터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중증장애인들의 고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남는다. 이번 사고로 장애인의 근로의욕이나 사업주의 장애인 고용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의 지혜로운 협조가 필요한 때라 생각된다. 중증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어려웠던 만큼 이번 사고를 성숙하게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보다 더 큰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박자경/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대구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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