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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6 19:05 수정 : 2020.01.07 13:21

강임순 ㅣ 인천목향초교 교사

2019년 12월27일, 초등학교 2학년 교실. 국어 수업 시간, 바른말 사용에 관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지나친 줄임말을 사용하지 말자’부터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쓰자는 내용까지가 주를 이뤘다.

먹을거리에서 유래한 우리말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교과서에 예로 나온 것은, ‘골탕(먹다)’, ‘감쪽같이’ 그리고 ‘비지땀’ 등이다.

비.지.땀. 나는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두부를 만들던 경험을 떠올려 신나게 그 낱말에 대하여 아이들에게 설명해 보았다. 끓인 콩물을 광목 자루에 담고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꾹꾹 누르면 자루 겉으로 콩물 원액이 ‘비지땀처럼’ 줄줄 흘러나온다. 자루 속에는 비지가 남는다. 이 작업을 할 때, 어머니의 이마에도 비지땀이 흘렀다.

나의 어머니는 농부였다.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땀 흘려 일하셨다. 바로 이웃집 아저씨가 운영하는 비닐하우스에서 딸기 농사 일을 하셨다. 품삯을 받고 일하는 ‘딸기 노동자’. 일을 끝내고 오시는 어머니의 몸에서는 딸기 냄새와 땀 냄새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딸기를 먹으면서 ‘엄마 생각’을 한다. 땀과 함께 일하시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여름날 아버지는 땀띠를 달고 사셨다. 아버지가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나는 아버지의 등목을 도왔다. 따로 샤워시설이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자세에서, 나는 허리부터 목까지 바가지로 물을 끼얹었다. 아버지의 등은 붉은 반점으로 가득했다. 땀띠였다. 어린 나이에도 마음 아팠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래 내가 어서 자라서 울 엄마, 울 아부지 땀 흘려 일하시지 않게 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초등교사가 되었다.

최근 영화 <미안해요, 리키>를 보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유명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다. 켄 로치 감독은 현실 고발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많이 찍는다. 이 영화도 그랬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가장이었던 리키.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며 택배회사에 취직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택배 물건을 가득 싣고 가던 중, 리키는 갑자기 요의를 느껴 차를 세운다. 차 트렁크를 열어 플라스틱병을 꺼내고 그 병에 소변을 본다. 볼일을 마치는 순간 느닷없이 강도 떼를 만난다. 강도들은 리키를 폭력으로 제압하고 미리 준비한 자루에 택배 물건들을 담는다. 게다가 피를 흘리고 쓰러진 리키의 얼굴에 리키의 소변을 붓는다. 병원에서 리키와 그의 아내는 택배회사 사장한테서 차디찬 요구를 듣는다. 빼앗긴 택배 물건 값을 변상하라는. 그리고 마지막 장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리키는 땀과 눈물과 피가 섞여 흐르는, 한쪽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택배 트럭의 운전대를 잡는다. 나는 리키와 함께 울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리키가 사는 영국에서도 가난한 소시민 부모들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며 살아간다.

비지땀에 관해 설명을 하던 중, 집중하지 않고 딴청을 부리는 아이 몇몇이 눈에 띄었다. “지금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있네. 얘들아, 지금도 너희들 엄마 아빠는 힘들게 일하시고 있을 거야. 가족을 위해서. 너희들을 위해서. 근데 이렇게 공부도 안 하고 딴짓만 해서야 되겠냐.”

그랬더니 바로 튀어나오는 말들은 이랬다.

“선생님, 우리 엄마는 일 안 해요. 지금도 아줌마들이랑 카페에서 수다 떨걸요.”

“선생님, 우리 엄마는 만날 텔레비전만 봐요.”

“우리 아빠는 사장이라 일 안 해요.”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나는 순간 당황했다. 내 말이 먹혀들지 않았다. “그건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래. 엄마도 친구랑 얘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거든. 대부분의 시간에는 열심히 일하시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니까 이렇게 너희들이 편안히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거야”라고 추슬러 보았지만, 막상 더 당황스러운 것이 있었다. 자기의 부모가 일을 안 한다고 말한 아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 보였다는 것이다. 평소 친구들을 자주 괴롭히고 싸우고 욕설을 잘하는 아이들. 왜 그럴까.

아이들은 이제 방학이다. 부모들과 가장 밀접해질 때다. 부모로선 자녀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기 좋은 때다. 내가 사는 모습에서 내 자녀는 무엇을 볼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삶이 힘들 때마다 부모님의 ‘땀방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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