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4 18:09
수정 : 2019.12.25 02:36
전우용 ㅣ 역사학자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처음 놓였던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통령기록관 직원에게 물었을 때에도, 국립민속박물관 직원에게 물었을 때에도, 대답은 “모른다”였다. 기밀 자료가 들어 있어서 폐기했는지, 일반적인 관용 물품 취급 절차대로 연한이 다해 불용처리 후 폐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물건에 얼마나 큰 역사적 의미가 담겼는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듯하다.
나는 1970년대 말, 고등학교 기술 시간에 컴퓨터에 대해 처음 배웠다. 컴퓨터는 0과 1, 예스와 노의 이진법으로만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들고 다채로운 것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기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습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포트란(FORTRAN)이니 코볼(COBOL)이니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이름만 기억날 뿐이다. 내가 이 물건을 처음 본 때는 1980년대 초였는데, 그때만 해도 이공학이나 의학 전문가들만 쓰는 물건인 줄 알았다. 내가 이 물건을 구입한 해는 1989년. 당시 내게 이 물건을 조립해 판매한 사람은 40MB 용량의 하드 디스크에 대해 “하루에 8시간씩 문서 작업을 해도 평생 다 못 쓸 용량”이라고 설명했다. 그 후로 30년, 나는 이 물건 앞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전자제품 중에서는 이 물건을 가장 자주 바꿨다. 그사이에 진보된 문서 작성기 겸 전자계산기 정도로 생각했던 이 물건에는 게임기, 팩시밀리, 노래방 기기, 사진 앨범, 티브이 겸 브이시아르(VCR) 등의 기능이 추가됐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기능들을 익혀야 했으니, 이 물건은 내 소유물이자 도구라기보다는 교사에 가까웠다.
개인용 컴퓨터는 1974년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한국 정부는 1976년에 이를 전략적 육성 품목으로 지정했다. 국산 개인용 컴퓨터는 1980년부터 생산되었다. 지금의 인류는 컴퓨터에 익숙한 부류와 그렇지 못한 부류로 나뉜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사람들은 컴퓨터 없이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컴퓨터를 조작하는 데에 능숙하든 아니든, 이 물건과 관련해 수많은 기억을 쌓아왔다. 사람들의 일과 놀이와 기억 모두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현대를 대표하는 물건으로 개인용 컴퓨터보다 더 적격인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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