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5 13:29
수정 : 2019.12.26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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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선거법 개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는 동안 의원석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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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망이 불투명하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제도가 아니라 민심을 얻는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점이다. 1988년 민정당의 참패는 선거법 시뮬레이션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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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선거법 개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는 동안 의원석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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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소선거구제 선거법이 만들어진 건 6공화국 출범 직후인 1988년 3월이다. 대선에서 승리한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강력한 지도자를 둔 세 야당, 평화민주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타협의 산물이 현 제도다. 그 전까진 한 구에서 2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 개헌으로 대통령 선거제도를 바꾼 만큼, 국회의원 선거제도 바꾸자는 국민 여론을 정치권이 거스르긴 어려웠다.
공고한 지역기반을 지닌 세 야당은 소선거구제 개편을 찬성했다. 문제는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집권 민정당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에 놀라 마지못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국민이 원한다고 소선거구제로 바꿀 민정당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히려 선거구제 개편에 민정당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막판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자, 민정당은 1988년 3월8일 새벽 야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막고 단독으로 ‘소선거구제 개편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렇게 치러진 그해 4월의 13대 총선 결과를 우리는 안다. 민정당은 125석을 얻어 과반 의석(150석)에 훨씬 못 미치는 참패를 했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70석으로 제1야당에 올랐고,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59석,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은 35석을 얻었다.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에서 5공 청문회와 광주 청문회가 열리고 국정감사가 부활했다. 수십년간 절대적 의회 권력을 누려온 민정당으로선 통탄할 일이었다.
민정당은 왜 자신의 목을 찌를 소선거구제를 한밤중에 날치기까지 하면서 통과시켰던 걸까.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선거법 개정 협상에 참여했던 인사는 “소선거구제가 되면 우리가 절대 유리하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청와대와 협의하며 야당과 선거법 협상을 진행했다. 청와대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민정당이 전국에서 1위를 휩쓸어 질래야 질 수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압승을 할까 그게 두려웠다”고 했다.
30년이 흘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새 선거법이 아마도 내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 성탄 전야에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하며 국회의사당에서 밤을 새웠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조를 짜서 국회를 지켰다. 외형으로만 보면 30년 전 국회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다른 점은, 1988년엔 그래도 여야 4당이 선거법 개정 협상을 열심히 벌이다 마지막 이견으로 대립했는데, 지금은 자유한국당이 지난 1년간 선거법 개정 작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다가 막판에 결사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방송들은 벌써 새 선거법에 따른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도하며 내년 총선 결과를 점치느라 바쁘다. 내 경험으로 보면, 이런 예측이 들어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 밑바닥을 도도히 흐르다 투표함을 열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민심’을 먼저 알기란 매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연동제 의석 비율을 낮추고 석패율제를 제외함으로써 자신한테 좀더 유리한 제도가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착각이다.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자유한국당에 10%포인트 격차로 앞서지만, 선거 국면에서 이 정도 차이는 사실 의미가 없다.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정의당에 표를 빼앗겨 박빙의 선거구에서 패하는 걸 두려워하기 전에, 집권여당으로서 민심에 기반한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게임의 룰’을 합의 없이 바꾸는 건 폭거라고 말하지만, 그 룰을 정하는 협상에 들어오지 않은 건 자신이다. ‘비례한국당’과 같은 꼼수로 의석을 늘릴 생각만 하다가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기 쉽다. 제도의 맹점을 파고들기보다, 먼저 국민 마음을 얻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반대와 농성으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국민이 ‘정권 대체세력’이란 믿음을 가질 수는 없다.
새 선거법이 가져올 분명한 변화는 중소 정당이 자신이 받은 득표수만큼 지금보다 의석을 더 가져가리라는 것이다. 득표율과 의석수의 괴리를 줄이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소 정당이 난립하면 이들이 가져가는 의석수도 예상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모든 전망이 불투명하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제도가 아니라 민심을 얻는 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점이다. 1988년 민정당의 참패는 선거법 시뮬레이션을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는 모든 정당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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