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2 19:04
수정 : 2020.01.03 02:36
최재봉 ㅣ 책지성팀 선임기자
‘2525년에’(In the Year 2525)라는 노래가 있었다. 미국 듀오 제이거 앤드 에번스의 1969년 히트곡이다. “2525년에/ 남자가 아직 살아 있고/ 여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들은 깨닫게 될 거예요”라고 시작한다. 2525년으로 출발한 노래는 3535년과 4545년, 5555년 등을 거쳐 9595년과 1만년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시간의 흐름을 짚어가며 묵시록적 메시지를 전한다.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 하고, 유리관에서 아들과 딸을 고르는 시기를 지난 뒤, 결국은 신이 내려와 세상을 ‘리셋’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노래는 경고한다.
1969년의 사람들에게 2525년이란 상상하기 쉽지 않은 까마득한 미래였을 것이다. 노래 제목이 된 연도를 2020년으로 바꾸어도 그들에게는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조지 오웰이 <1984>라는 에스에프 소설로 끔찍한 미래 사회를 그린 때가 1949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1984’의 다소 평범한 느낌에 비해 ‘2020’은 그 자체로 ‘2525’를 닮은 미래적 울림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어떤 미래에 와 있는 것이다. 그 미래의 핵심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할까.
장강명이 <한겨레> 신년호에 발표한 소설 ‘승인할까요’에는 노래 ‘2525년에’와 닮은 설정이 나온다. 2020년 1월1일 주인공 부부는 세상을 20년 전인 2000년으로 되돌릴지 아니면 2020년 지금의 시간을 계속 이어가게 할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사실 주인공 부부는 자신들의 현재 삶에 큰 불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속한 세계 전체로 범위를 넓혀 볼 때, 2000년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세상은 문제투성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세계의 많은 구성원들이 고통과 슬픔에 시달리는 상황 앞에서 부부는 “도덕적 책무”를 외면하기 어렵다.
1월3일치 <한겨레>에 실린 김초엽의 소설 ‘소망 채집가’ 역시 2020년 벽두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간들이 2020년이라는 연도에 투영한 기대와 소망을 인격화한 존재다. 이제 사람들이 기다려왔던 2020년이 되었고 ‘2020년’의 인격적 구현체인 주인공은 사람들 앞에 나가 자신의(그러니까 2020년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주저하거니와, 까닭은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는 것. 장강명의 소설에서 책임이 강조되었다면 김초엽은 기대와 소망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 결론은 동일하게 음울하고 회의적인 것 같다. 현실이 된 미래, 2020년은 장밋빛 전망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다시 노래 ‘2525년에’로 돌아가보자. 노래 첫머리에서 살아남은 남자와 여자가 깨닫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 “이제 인간의 지배는 끝났”다는 사실, 인간이 없어진 지구에서 “영원의 밤에 걸쳐 멀리 있는 별빛만/ 어제처럼 반짝”이리라는 쓰디쓴 진실이다. 이유는? “인간은 이 오랜 지구가 줄 수 있는/ 모든 걸 차지하고/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으니까요.”
2019년 한국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에스에프의 발흥을 드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장강명과 김초엽은 그 주역들로 꼽힌다. 에스에프(SF)란 본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에서 온 말이지만, 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사고실험이라는 점에서 ‘사색적 소설’(speculative fiction)로 풀기도 한다. 사고실험을 반드시 과학소설만의 몫으로 제한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의 문학에 기대되고 요구되는 사고실험은 어떤 것일까. 노래 ‘2525년에’에 그 답이 있다. 지구가 주는 것을 모두 차지하고는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않는 행태에 대한 반성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2020년 현재, 그런 행태의 핵심은 기후위기로 요약할 수 있다.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로 인한 인간 멸종이 빠른 종말이라면, 기후위기의 누적으로 인한 멸종은 느린 종말이라 하겠다. 그런 만큼 피부에 와닿는 실감이 덜할지는 모르지만, 과학자들은 시간이 얼마 없거나 이미 늦었다고 경고한다. 그런 위기의식에 정치와 사회, 문화예술 등 모든 부문에서 응답을 해야 한다. 문학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2020년의 문학은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b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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