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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2 17:59 수정 : 2020.01.13 11:02

이은지 ㅣ 문학평론가

텔레비전을 비롯한 여러 영상매체에서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경향은 광고의 예능화가 아닐까 싶다. 기존의 광고는 영상물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형식을 취해 광고를 보는 수고로움을 해당 영상물에 대한 비용으로 회수했다. 반면 최근의 광고는 간접광고와 같이 영상물의 맥락을 방해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예능으로 변모하고 있다.

광고는 서구 산업화 이후 각종 소비재가 대량생산되면서 발생한 잉여를 처리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다. 광고의 목적은 필요 이상으로 축적된 상품들을 향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되게 형식적으로도 이물적인 존재로 여겨졌던 광고가 이제 더 불편하지 않게 되어가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잉여의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장악한 현실을 보여준다.

러시아 소설가 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는 옛소련이 붕괴한 직후 시장질서가 밀려들며 혼돈에 빠진 러시아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하고 소련의 가치를 선전하는 시인이 될 참이었던 주인공 타타르스키는 하루아침에 뒤집힌 사회를 선전하는 카피라이터가 된다. 광고가 스페인어로 ‘선전’을 의미한다는 고용주의 말이 보여주듯이 그는 사회주의의 시인 대신 자본주의의 시인이 되었다.

그는 서구 상품에 소련의 이미지를 덧입혀 친숙한 것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러시아인들 의식 속에 시장질서가 이식되는 데 일조한다. 주인공은 방송을 관장하는 국가 기구에 발탁되어, 공백 상태인 러시아 정계의 인물들을 가상으로 제작하고 송출하는 정치 선전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상품 광고와 정치 선동이 절묘한 합일을 이루는 소설의 후반부는 자본주의의 선전물로 뒤덮인 오늘날의 풍경을 되돌아보게 한다.

백승연의 단편 <홍학 없이 홍학 말하기>에서 사람들은 단어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상품을 소비한다. 자주 쓰는 단어일수록 값을 더 쳐주며, 한번 판 단어는 다시는 쓸 수 없다. 주인공 부부는 드물게 쓰는 단어부터 하나둘 처분하여 마련한 돈으로 좀 더 좋은 물건을 사고, 양가에 용돈을 부쳐드리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주 쓰는 단어들까지 추려 팔면서 부부간의 소통은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리라 확신하지만 일상은 어딘가 공허해지기 시작한다.

소통의 가능성을 소비의 가능성과 맞바꾼 이들의 세계가 얼마나 단조로울지 암시하며 소설은 끝맺는다. 그러나 사실 이 기괴한 풍경은 기본적인 생존부터 여가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국면을 소비에 점령당한 우리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가 그 자체로 유희의 대상으로 제시되고 또 그것을 즐거이 소비하기에 이른 우리의 모습은 그만큼 우리의 의식이 소비를 조장하는 세계에 철저히 저당 잡혀 있음을 환기한다. 광고가 없는 세상, 소비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이 불가능성을 극복할 일말의 가능성을 위 소설의 부부에게 찾아온 공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끄는 순간 엄습하는,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한 직후에도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를 회피하지 않고 끈질기게 직면하다 보면 아주 조금은 자유로운 존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한에 가까운 경로로 즐거움이 상시로 수혈되는 가짜 행복의 세계에서 우리의 주체성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기를 선택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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