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06 18:30
수정 : 2005.01.06 18:30
1997년 12월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정을 맺은 직후 한 여성단체가 고급 모피점 앞을 가로막고 사치성 소비를 줄이자는 시위를 했다. 이를 두고 한 해외 경제지의 한국 특파원은 “불경기에 무엇이든 소비를 줄이는 건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한국 주부들의 ‘무식함’을 비웃는 기사를 썼다.
물론 순수 경제 이론으로 보면 그의 말은 지당하다. 케인스 이론의 핵심이 불경기 때는 소비와 투자가 줄기 때문에 정부라도 지출을 늘려 경기를 진작해야 한다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기가 찬 건, 이 기자가 같은 글에서 한국이 ‘아이엠에프 처방’을 더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아이엠에프 처방의 핵심이 정부 지출 삭감, 이자율 증대 등 총수요 삭감인데, 같은 일도 한국 주부가 하면 무식한 것이고 국제통화기금이 하면 현명한 것이란 얘긴가? 전형적인 이중잣대다. 이 기사뿐 아니다. 당시 온 세계가 나서서 한국을 비효율과 부정부패가 가득 찬 나라로 몰아붙였다. 국내에서도 과거 우리가 이룬 것을 모두 부정하는 자학적 태도가 팽배했다. 과연 우리의 과거가 그렇게 부정적인 것이었나?
1960년대 이후 외환위기 때까지 우리 경제의 1인당 연평균 소득 성장률은 6%가량이었다. 한 세대 만에 소득이 7배 늘어난 것이다. 선진국의 산업혁명 때 소득 성장률은 1% 수준으로, 소득이 갑절 느는 데 두 세대가 걸렸다. 국제기준으로 볼 때 소득분배도 평등한 편에 속했다. 가난했던 60, 70년대에도 거의 모든 어린이들이 초등교육을 받았다. 선진국도 산업화 초기에는 어린이 노동이 광범했던 것에 견주면 무시할 수 없는 성과다.
물론 우리의 과거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세계 최대의 남녀 임금격차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부정부패와 인권탄압도 많았다. 복지제도는 가난한 나라들보다도 빈약했다. 반드시 시정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시장을 통해 경쟁을 촉진해 효율성을 높이고 부정부패를 막는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주의 개혁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이른바 진보세력도 이 프로그램에 동조했다. 이들은 무조건적인 시장 숭배자는 아니지만, 시장의 확대가 과거 국가권력과 재벌의 폐해를 줄여 형평을 높일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결과가 무엇이었던가?
적대적 인수합병의 자유화로 경영권이 불안해지고 주주권의 강화로 배당률이 크게 늘어나면서 기업의 투자 의욕과 능력은 약화됐다. 또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자본 지배가 증가하고 금융규제가 안전성 위주로 바뀌면서, 기업들은 투자자금을 동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과거의 3분의 2 수준으로 성장 잠재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형평의 측면에서도 결과는 좋지 않다. 노동시장 자유화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노동자간 임금격차를 확대했다. 자본시장 자유화로 투기로 떼돈을 버는 사람이 생겼고, 기업 실적은 부진해도 고액 연봉을 챙기는 경영자도 생겼다. 주식시장의 힘이 세지면서 기업 이윤이 재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주주들한테 돌아가게 됐다. 그 결과 절대 빈곤층이 전체 국민의 5.9%에서 11.5%로 갑절로 늘었고, 소득분배도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중 멕시코와 미국의 뒤를 이어 불평등(2000년 기준)하게 됐다.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개혁은, 성장과 형평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진보주의적인 개혁론자들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시장은 좋은 하인이지만 못된 주인이라는 말이 있다. 적절한 정부 개입 없이 시장은 성장도 형평도 가져오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진보적 개혁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나설 때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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