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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9 18:09 수정 : 2005.01.09 18:09

지난해 12월초 경기도 화성 삼성 반도체공장의 구내식당에서는 근로자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반도체사업 30주년 행사를 마친 이건희 회장이 식당으로 들어선 순간이었다. 그가 식사를 마치자 여직원들은 너도 나도 기념사진을 찍자며 팔짱을 꼈다. 공장을 나서는 이 회장의 차를 뒤쫓으며 차창 밖으로 내민 손을 잡는 이들도 있었다. 이를 본 한 간부는 “유명 연예인도 회장님 인기만은 못할 것”이라며 웃음지었다. 하지만 근로자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삼성전자는 최고의 직장이니까.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이익 100억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순수 제조업체로는 세계적으로 도요타에 이어 두번째라고 한다. 삼성 경쟁력의 비결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과 전문경영인의 역량, 구조조정본부의 전략적 뒷받침이라는 ‘삼위일체론’으로 설명된다. 보는 이에 따라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최고경영자를 빼놓고 삼성의 성과를 설명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그에게 한가지 숙제가 떨어졌다. 전경련 회장을 맡아달라는 재계의 요청이다. 줄곧 전경련 회장 후보 ‘0순위’로 꼽히면서도 손사레를 쳐온 그이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모두 재계를 위해 한국 제1의 실력을 가진 이 회장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삼성은 조심스럽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은 “삼성이 세계시장에서 ‘안정적 일류’로 정착할 수 있도록, 삼성 경영에 전념하는 게 국가적으로 더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올해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 것이라며, 기대가 높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더 큰 관심은 단기처방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의 ‘양극화 구조’를 극복할 수있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는 데 있다. 지금의 한국경제는 대기업-중소기업, 모기업-하청업체, 정규직-비정규직, 수출-내수 간의 연관성이 끊어져 있다. 한쪽의 성장과 과실이 다른 쪽으로 흘러가지 못하는 이중구조이다. 부문간 단절을 극복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새 모델이 절실하다. 경쟁력만 내세워 직원들을 멋대로 잘라내는 기업 행태와 일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로 인한 고용 불안과 비정규직의 소외가 내수침체를 가속화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기업과 경제를 죽이는 악순환이 고착화될 조짐이다.

다행히 2005년의 출발은 희망을 엿보게 한다. 사회원로와 각계 대표들이 고용·성장이 함께 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람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자며 ‘2005 희망제안’을 했다. 정부의 노력에 화답을 한 것이다. 이제 공은 기업과 기업인, 노조에게 넘어갔다. 특히 한국경제가 어려운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과 함께, 정부와 재계의 대립으로 인한 불안이 크게 작용한다고 볼 때 기업과 기업인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동안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전경련도 주위의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협조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언했다.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 그의 메시지는 ‘삼성 개혁’의 출발점이 됐다. 재계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정부와 손을 잡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새 성장모델 구축에 적극 나서도록, 이 회장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지난해 재계의 큰 화제는 기업 사회공헌의 확산이었다. 특히 삼성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올해 삼성 신년사에서도 강조된 이건희 회장의 ‘나눔경영’ 철학이 깔려있다. 이 회장이 삼성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재계와 한국경제를 위해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나눔경영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진정한 리더는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재계의 한 임원은 “한국경제에서 그럴 힘과 여유가 있는 곳은 삼성뿐”이라고 말한다. 이 회장은 ‘반도체 신화’로 한국경제에 기여했다. 이제는 국가경제와 국민 전체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그러면 2005년은 국민이 재계에게 마음의 박수를 보내는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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