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0 18:58
수정 : 2005.01.10 18:58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삽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를 사랑하고, 때로는 본인의 일을, 때로는 돈을 사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셨나요?
지난해 12월26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구의 지축까지 흔든 대지진이 남아시아에서 일어나 그 피해로 15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백만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15만명이 얼마나 많은 인원인지 얼른 가슴에 와닿지 않지만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꽉 찼을 때의 인원이 5만명이라고 하니 그 3배가 넘는 숫자에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런 피해 소식을 대할 때 숫자 개념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죠. ‘사람이 죽어간다.’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이미 15만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한명이 더 죽는다고 해도 숫자상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이, 내 동생이나 내 아이 혹은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해보죠. 지금까지의 사망자 중 15만분의 1에 해당하는 하찮은 ‘숫자’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당사자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입니다.
지금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에는 수백만명의 이재민들이 좁고 위생상태가 열악한 이재민 피난소에 모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 눈앞에서 내 부모가, 내 아이가, 내 형제가, 내 친한 친구가 사라져 가는, 아직까지도 믿겨지지 않는 그때 상황을 되새기며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아직 잃을 것이 하나 남아있습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화장실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대피소에는 수천명이 아무렇게나 용변을 보고, 구토를 합니다. 또 신발도 없어 질퍽거리는 그 땅을 맨발로 돌아다니고, 씻지도 못한 그 발 그대로 대피소 안으로 들어옵니다. 대피소에는 태어난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갓난아기부터 70~80살이 되는 어르신까지 빼곡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건강한 청년도 피난소에만 들어오면 시름시름 앓는 형편에 하물며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들과 노인들은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겠습니까?
지금 남아시아에서는 모든 것이 절실하지만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이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는 깨끗한 물과 의약품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처럼 조금이나마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이 후원하는 성로원이라는 아동보육시설을 매주 찾아 아이들을 돌보고, 노숙자와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성로원의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벌써 15년 전인데요. 명절 때는 100인 분이 넘는 잡채나 불고기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가져다 주는데 그 기쁨이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잡채 한 접시, 불고기 한 점이 나에게는 단지 음식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겐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 모릅니다. 모처럼의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배불러진다는 것이 제가 만나본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나눌수록 더욱 나누고 싶어지는 ‘나눔의 중독’을 제대로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기회에 나눔을 한번 시작해 보세요. 많은 것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돈 백원, 천원을 나누면 그것이 깨끗한 물과 약이 되어 사람을 살리는 참으로 가치 있는 도구가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죽어가는 저 사람들을 향해 지금 쥐고 있는 손을 조금만 펴주세요. 오늘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쓴 몇 백원이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저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애리/탤런트·월드비전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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