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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0 19:01 수정 : 2005.01.10 19:01

새해 화두는 단연 경제 살리기다. 말이 좋아 경제 살리기지, 정확하게 말하면 경기 부양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하고, 재계도 이에 화답하고 나섰다. 때맞춰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사회원로들도 ‘2005 희망제안’을 통해 고용과 성장이 함께 가는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고 거들었다. 모처럼 뭔가 장단이 맞아가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정부의 상황 인식이 철저하지 못하고, 경제 살리기의 방향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경기 부양이 제동장치 없이 과속을 할지도 모른다는 점도 불안감을 더한다.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은 으레 경기 침체기의 막판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곤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올 예산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추경예산 편성 얘기가 나오는 게 대표적이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새해 인터뷰에서 콜금리 인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정부가 언제 어떤 강도로 경기 부양책을 써야 하는지는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3년 초 이후의 경기 흐름을 보면, 미미하나마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심리는 아직 바닥이지만 전분기 대비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하락세를 멈췄고, 경기 선행지수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기업들도 올 들어 왕성한 투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환율 하락 등으로 수출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우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환율에 좌우될 정도로 취약한 상태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통령과 정부가 모든 경제정책을 경기부양 쪽에 맞추는 게 타당한지는 좀더 심사숙고해야 한다. 앞뒤 안 가리고 경제에만 매진하는 게 반드시 잘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경기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경기 부양의 강도를 조절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의 정책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책임 있는 정책 당국자라면 당장은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특히 국민 여론만을 앞세우는 정치권의 요구는 잘 가려 들어야 한다.

‘경제 올인’을 걱정하는 더 큰 이유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가 방향을 잘못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 경제운용 계획에서 5% 성장과 일자리 40만개 창출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은 이런 단기적인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목표가 설사 달성되더라도 중산층이 무너지고 고용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 등이 완화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양극화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한때 8~9%의 성장을 거치면서도 오히려 고질화한 것이어서 성장률이 높아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단순히 성장률 목표 수치에 매달릴 게 아니라 빈곤층, 영세 자영업자, 중소 하청업체 등 사회적 약자를 살리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고서는 아무리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도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

기업들의 경제 살리기 동참도 그 속내를 잘 살펴봐야 한다. 몇몇 대기업들이 재무제표상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더라도 그것이 고용 조정 등으로 비용을 줄이고, 중소 하청업체를 쥐어짜서 이룬 것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경영진과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이룰 때라야 진정한 경제회생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들이 경제살리기 동참을 이유로 정부에서 무언가 얻어내려고 하면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인다. 지금까지도 기업들은 경제난을 앞세워 각종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처음에는 완강하던 정부도 이제는 재계와 화해 분위기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이 정부와 재계 사이에 원칙 없는 주고받기로 이어질 경우, ‘경제 올인’은 예상밖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경제 살리기에 발벗고 나선 정부나 기업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박수를 보낼 일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경제 올인’은 자칫 화를 부르거나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눈앞의 성과만을 쫓다가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정석구 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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