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쪼부터)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박준선 대한변호사협회 이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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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토론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인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활동인가? 최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광장에 나온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판결비평에 대한 두가지 시선이다. 참여연대는 “사회 변화의 흐름이나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반인권적이고 사회적 약자 보호를 등한시한 판결을 비판하고 긍정적인 판결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겠다”고 밝혔다. 기대와 우려 두 시선을 보여주는 한상희 사법감시센터 소장(건국대 법대 교수·56)과 대한변호사협회 이사인 박준선 변호사(49)가 지난달 2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논쟁을 벌였다. 한상희 “시민 공감하는 판결위해 ‘광장’ 만들자는 것” 박준선 “사법부 독립·신뢰성 추락 국민 혼란만 부를것” 한상희 교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뒤섞인 명함 뭉치에서 자기 명함을 찾았다. 그의 휴대폰 벨소리는 <어머나>다. 박준선 변호사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두 사람은 입성만큼이나 차이 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한상희=‘광장에 나온 판결’이라는 이름으로 판결비평을 시작한 이유는 대략 두가지 입니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하는데 국민은 법관이 뭘 말하려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국민들이 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설명하자는 겁니다. 두번째는 시민 사회가 생각하는 법 정의와 법 감정을 판결에 잘 담았는지 짚어보는 거죠. 법관과 일반 시민 사이 의사소통의 통로가 돼 보자는 게 기본 취지입니다. 판결비평 보조팀을 구성해서 법원 판결을 쭉 훑어보며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국민 법 감정과 직결될 수 있는 판결을 고를 겁니다. 이를 사법감시센터가 자체적으로 평가하거나 외부 전문가에게 비평을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박준선=취지는 참 좋습니다. 그런데 사법시스템은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절차입니다. 여론 재판이라든가 사법감시센터의 판결비평은 분쟁의 새로운 도화선이 될 수 있어요. 특히 이념적 색채가 들어간 사건은 이런 비평 활동으로 분쟁이 심해져 국민이 통합의 길이 아니라 분열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됩니다. 실질적으로 판결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친다면 사회에 이익이 될까요? 판사도 사람인지라 사회적 조류에 휩쓸려 역사적으로 타당한 판단을 하기보다는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게 될까봐 걱정이죠. 한=종국적으로 분쟁이 해결되려면 권위적인 결정이 분쟁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지금까지 법원이나 국가의 권위적인 판단이 내려지면 겉으로는 분쟁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불씨는 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그렇죠. 왜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는데도 불복하고 무리 지어 거리로 나가는 현상들이 나타날까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국민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판결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쪽을 연결시켜주는 작업이 필요하죠. 저희는 하급심보다 대법원의 판결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1차적으로는 법 판단이지만 2차적으로는 사회의 작동원리를 결정하는 정책 판단이기도 해요. 예를 들면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판결이 그렇습니다. 또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판단의 핵심은 대한민국 국민이 이를 픽션으로 볼 것인지 특정인 인격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으로 볼 것인지 법 감정 문제죠. 그러니 국민들의 판단이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전달할 수 있는 겁니다. 박=많은 사람들이 최근 시민단체를 제4의 권부라고 말합니다. 판결 선정이나 비평의 기본 관점을 시민단체가 좌우할 수 있어요. 사실 시민단체는 다소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았나요? 구성원과 실무 담당자를 볼 때 판결비평의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너무 진보적이거나 좌쪽에서 판결을 바라보고 판결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어요. 행정수도 위헌 결정을 예로 드셨는데 그때 이전을 추진하던 정당은 헌법재판소를 인신공격하듯이 비판하고 존립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법감시센터가 아무리 합리적이라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헌재를 비판한다면 국민들에게 혼란만 주는 구실을 하지 않겠습니까? 박/ 전문가 견해의 차 담고 있어야 독자는 균형잡힌 판단할 수 있어
한/ ‘많은 반대의견’ 공격받기 원해 그 공방속에서 국민은 가늠할 것 한=우선 사법감시센터는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엔분의 일이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이념을 대변하거나 그 이념에 대한 절대적 우월성을 주장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까지는 법원의 판결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국민과 판결을 연결하려고 광장을 만들고 말거리를 끄집어 낸 거죠. ‘우리는 이 판결에 대해 이런 이념적 지향 속에서 이렇게 바라봤다’라고요. 예를 들어 ‘<그때 그 사람들> 판결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선 이런 부분이 잘못됐다’라고 말한 겁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한다’, ‘당신 말이 맞다’ 이렇게 의견을 내주길 바라는 거죠. 또 저희가 이념적 당파성에만 기대어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를 방지하려고 학자, 변호사 등 자기의 판단과 주장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갖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평설하는 겁니다. 박=외국에선 이런 기능을 언론이 하고 있죠. 예를 들어 어떤 기자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비판할 때마저도 옹호하는 의견과 비판하는 의견을 같이 실어서 국민과 독자가 판단하게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결 비평이 자리 잡고 분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문제는 판결비평 시스템이 서로 다른 의견을 수렴하는 객관성을 갖췄냐는 겁니다. 한 주제에 대한 비평 글에 전문가 사이 견해의 차이가 같이 녹아들어가야 독자가 균형 잡힌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사법감시센터의 구성원 성향에서 좌우,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잡고 있습니까? 한=그렇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되죠. 사법감시센터가 대한민국 시민단체의 대표자도 아니죠. 사법감시센터가 우든 좌든 이념적 스펙트럼을 차지하고 비평할 때 다른 쪽에서 저희를 공격하길 원합니다. 그래야 토론의 장이 열리죠. 공격과 반응의 과정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다시 보게 됩니다. 국민들은 양쪽의 주장을 보면서 판결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거고요. 그리고 저희가 한쪽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박근혜 대표 홈페이지 사건 판결에 대한 비평에서도 대법원 나름대로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그래도 하급심이 보였던 전향적인 자세가 반영되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했죠. 두가지 의견이 나온 겁니다. 문제는 사법감시센터와 같은 기능을 하지만 이념적으로 다른 부분이 현재 형성되지 않았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하는 작업이 더 필요합니다. 도발하고 있는 거예요.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사법 민주화도 참다운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국민의 공감 속에서 법원의 판단이 이뤄지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법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나눠야죠. 한 교수는 궁극적으로 사법 민주화를 위해 국민과 사법부 사이의 의사소통이 이뤄져야 하며 그것이 판결비평의 취지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사법부는 분쟁이 최종적으로 해결되는 장으로서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하는데 시민단체의 활동이 이를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고 법을 만들고 바꾸는 건 국회죠. 사법감시센터는 지나치게 진보적인 해석을 요구하며 법관이 그 해석에 따라 사법부의 권한을 넘어 입법부의 기능까지 하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사법감시센터의 취지대로 되려면 사회적 논란이 이뤄져야죠. 성숙한 체계에서 독점적인 권위가 아니라 여러 권위들이 있을 때 건전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데요. 다른 집단에서 사법감시센터와 다른 의견을 내 놓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보수적인 목소리는 게으른 편이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죠. 사법부엔 분쟁을 종식시키는 최종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법부의 권위를 위해 법관의 독립을 국민들이 지켜주는 거죠. 사실상 권력인 시민단체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해선 안 됩니다. 시민단체의 요구가 곧 국민의 요구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한 지금 같은 비평 활동은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커요. 사법부의 독립 문제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먼저 시민단체 자신의 이념적 기반을 밝히는 개방성이 전제돼야겠죠. 한=사법 판단은 구체적 법규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입법부가 하는 규범 정립과 사법부가 하는 규범 정립은 다른 것이죠. 법 정책에 대해 입법부와 사법부에 요구하는 수준도 다릅니다. 또 이념적 지향을 명확히 밝히라고 하시는데 저희는 거기에 충실합니다. 예를 들어 <그때 그 사람들> 판결에 대한 비평에서도 ‘우리는 헌법에서 어떤 부분에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에 이번 판결을 이렇게 본다’고 명시했죠. 사법감시센터는 헌법의 틀 속에서 이제까지 법원이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던 이념들이 있다면 이를 재확인하고 그걸 바탕으로 판결을 비판합니다.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거죠. 그리고 저희 단체가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국민들의 의사를 잘 대변해 왔기 때문입니다. 명멸한 단체들도 많죠. 거기서 활동의 정당성을 찾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시민단체가 권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해요. 사법부가 권위적인 분쟁처리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좀더 국민들에게 다가가 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사법부의 목소리가 국민들이 생각과는 다른 게 많아요. 법 조문에 너무 충실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사법부 나름의 편협한 시각이 있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겁니다. 한상희 ‘헌법틀안 균형잡힌 판결’ 국민뜻 대변 박준선 사법감시센터 좌·우 진보·보수 균형있나 박=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법적인 고민을 하는 집단은 결국 사법부입니다. 예컨대 접하는 정보의 양에서 야당 활동할 때와 대통령이 된 다음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요. 곧 시민단체의 견해도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판결을 수 없이 써보고 사법적인 판단을 해본 사람과 학자나 시민의 논평은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1심, 2심, 3심을 거쳐 수많은 정보와 사실 판단에 대한 숙려 기간을 거쳐 나오죠. 사건 기록을 보면 분량이 엄청난데 피상적으로 판결문만 보고 한쪽 당사자 이야기만 듣고 비평하는 건 위험합니다. 더구나 일종의 당사자인 법관들의 반론권이 보장돼 있지 않죠. 판결로만 말하는 판사가 시민단체나 언론이 관심 갖는 비평에 대해 일일이 반론할 수 없습니다. 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도 있고요. 반론이 배제된 상태에서 일방적인 비평을 하면 여론을 한쪽 방향으로 틀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의 활동은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당성이 있다고 하시지만 그건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죠.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니 판례건 대통령의 말이건 누구나 비평할 수 있는 기본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봐야 합니다. 모든 권위를 깰 수 있고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성숙할 수 있다는 발상은 무책임해요. 한=개별 사건에 대해 담당 판사가 가장 전문가라는 점엔 동의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록, 법률과 법기술이 종합돼 있는 사건에 판사가 매몰돼 그 판결의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의미를 간과할 수도 있는 겁니다. 물론 잘 반영할 수도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는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들춘다기 보다는 시대적 틀 속에서 개별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박=법관들이 시대 정신을 도외시하고 판단할지도 모른다는 건 일종의 기우죠. 한=그러면 저희가 법관의 판단을 오해할 거라는 것도 기웁니다. 관점의 차이를 반영하자는 거예요.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저희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게 아닙니다. <그때 그 사람들>의 판결이 사회에 유익한 것인지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의하지는 않아요. 문제는 의견이 다르면서도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법관의 독재가 일어나요. 뒤에서 궁시렁거릴 뿐 법관의 판단을 공론의 장에 두고 검증해 보는 절차가 없어요. 박=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는 걸 사법부의 독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모든 중요 사항을 토론의 광장에 놓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도 따져봐야죠. 민주주의도 모든 것을 수용하는 완결한 제도는 아닙니다. 판사는 선거로 뽑지 않죠. 행정공무원이나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민주적 선거 과정보다 중시되기 때문입니다. 다 선거로 뽑는다면 온통 정치적으로 분열되지 않겠습니까? 한=법관을 선고로 뽑는 나라도 있죠. 모든 국민이 행정 과정에 참여하면 혼란이 온다는 말씀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민을 정치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개발한 논리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직업 공무원제는 우리 헌법이 선택한 겁니다. 하지만 관료시스템을 선택했다는 게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라는 요청을 배제하는 건 아니죠. 수렴하면 할수록 좋다는 겁니다. 그게 헌법의 정신인데 이제까지 행정, 사법 부분에서는 이 과정이 차단돼 있었어요. %%990002%%
꽃샘추위 탓에 실내에는 냉기가 돌았지만 두 사람의 낯빛은 상기됐다. 논의는 갑자기 다른 나라의 공무원 선거제도까지 튀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시민단체가 편향됐다고 지적했고 한 교수는 헌법 정신에 충실할 뿐이라고 맞받아쳤다. 박=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누구도 일언반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결정과 기관에 따라 비평의 수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겁니다. 사법부의 판단은 최종적으로 분쟁을 끝내기 위한 것이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요. 시민단체가 절대 비평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이어야죠. 한=참여연대 같은 ‘권력적인’ 시민단체가 사법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걸 우려하시는데요. 물론 저희도 자의성, 불합리성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헌법 틀 안에서 가치를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가능하면 모든 법 공동체가 공감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비평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이제까지 판결비평 같은 작업이 너무 없었어요.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고 지금은 과도기라고 봐요. 앞으로 저희들의 이야기를 공격하는 사람들도 생길 거고 그런 과정을 통해 공론의 장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얼마전부터 시작한 공개간담회인데요. 판결비평에 대해 여러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죠. 박=사법감시센터가 긍정적인 구실을 한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스스로 이념적으로 치우친 걸 인정한다면 시민의 대다수를 대변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춘 집단이 되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나요? 판결비평도 이런 점이 선행되어야 제대로 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자꾸 저희가 좌쪽 진보쪽으로 기울었다고 하시는데 저희가 생각하는 건 헌법적인 가치입니다. 헌법의 틀에서 사법부가 무엇을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한가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 헌법이라는 아주 좁은 이념 스펙트럼 안에서 움직일 뿐이지요. 예를 들면 표현의 자유가 우선해야 하는지 개인의 인격권을 우선해야 하는지는 고민하는 거죠. <그때 그 사람들> 판결에 대한 비평에서 저희는 법원이 박정희 대통령 편에 섰기 때문에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리를 보면 픽션은 인격 침해와 관계가 없는데 왜 우리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죠. 한/ ‘분쟁 처리기관 권위 보장’ 은 인정 다만 그과정서 편협된 시각 있지 않나
박/ 3심까지 많은 자료와 숙려기간 거쳐 한쪽 이야기만 듣고 비평하는 건 위험 박=표현의 자유가 앞서냐 개인의 인격권이 앞서냐, 국가에 대한 의무가 앞서냐, 개인의 활동이 앞서냐 이런 문제들도 결국 이데올로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그렇게 해석 하면 법원 판단도 이념적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판결이 나오면 끝에서 끝이 싸우죠.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여당이 인신 공격 수준의 태도를 보였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한 예입니다. 저희는 이런 극단을 피해 법이라는 틀 속에서 헌재의 판결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보자는 겁니다. 법의 틀 안으로 끌어오는 거죠. 박=모든 사안은 이념을 떠날 수 없습니다. 좌우라는 말이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를 들어 생산이야 복지냐 할 때 복지를 앞세우면 다소 좌편향이라고 일반적으로 쓰는 것을 따른 겁니다. 외부에서 사법감시센터를 보면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잘 안보입니다. 한=객관성을 담보하는 방식엔 여러가지가 있죠. 물리적인 형평성을 갖출 수도 있습니다. 또 이제까지 법 공동체가 합의하고 있는 가치들이 있을 겁니다. 이 가치들 속에서 정합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객관성을 담보하는 방법이죠. 다 고려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판결비평이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나요? 사실 저희들은 영향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죠. 판사도 인간인기 때문에 판결을 썼을 때 언론에 어떻게 나는가도 중요하고 여론의 쟁점이 되는 게 엄청난 압력이 되기도 합니다. 심리적인 위압감을 주고 여론에 노출시켜버리는 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어요. 한=만약 인사 불이익을 받을지 몰라 판사들이 위압감을 느낀다면 그건 인사시스템의 잘못이죠. 법관의 계층 구조가 없어져야 하는 거고요. 또 법관이 자기 판단에 대한 비평 때문에 위축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 법관 양상 시스템이 잘 못된 탓입니다. 법관은 스스로 독립된 기관으로서 시민단체의 비평에 대해 반박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 법관은 외부의 평가에 참 취약합니다.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지 못했고 법관도 그런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법관은 원고쪽 주장을 선택했다고 합시다. 저희는 피고쪽 주장을 가지고 비평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법관이 양쪽 주장을 면밀히 고려해 판단했다면 저희 비판은 이미 있었던 것이니 법관이 위축될 이유가 없습니다. 박=사법시스템의 흠결이 문제라면 그걸 보완하는 데 치중해야죠. 선진국 시민단체들의 구실도 시스템을 바꾸려는 것 아닙니까? 한=저희 판례비평이 사법부의 독립을 저해한다고 하시니까 실제로 독립을 저해하는 요소는 내부적 시스템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다면 저희가 아무리 비판해도 사법부의 독립에 위해가 되진 않는다는 거죠. 박=구체적인 비평은 다음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죠. 만약 못마땅한 판결이 자꾸 나온다면 왜 그런지 사법부의 시스템에서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시민단체의 판결비평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한다는 건 심리적인 부분이 많을 겁니다. 한=저희는 비평할 때 사법감시센터의 의견이라고 항상 밝힙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는 걸 인정하죠. 이걸 인식하지 않고 저희가 국민의 이름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법관의 잘못입니다. 법관은 비평이 의미가 없으면 버리고 의미가 있으면 받아들이면 되죠. 박=그런 목적이라면 비평을 공개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비평의 형식이지만 판사를 비난하는 성격도 있는 것 아닌가요? 한=비평을 내고 법원과 시민 양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겠다는 겁니다. 또 시민들이 법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은 바로 알리겠다는 취지도 있죠. 박=비평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사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기보다는 개별 판결이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시스템의 부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사법부의 독립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성을 부여받지 않은 소수의 판례비평이 사회에 이롭기만 한 것인지 묻고 싶어요. 비평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한=물론 판결비평이 더 많은 공감을 얻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습니다. 다만 그나마 돌을 던지는 작업은 누군가는 시작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이제까지 공론의 장에서 배제됐던 부분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오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국민 속에서 사법이 이뤄지는 틀을 만들 수 있어요.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비평1 - 박대표 홈페이지에 비판 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지극히 소극적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판결비평의 첫 작업으로 선거운동기간 전에 박근혜 대표 홈페이지에 비판글을 올린 김아무개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과 영화 <그때 그 사람들> 가처분 신청에 대한 판결을 다뤘다. 비평문은 참여연대 홈페이지 (peoplepower21.org)에 올렸다.
첫번째 비평은 대법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과 항소심을 파기한 것에 대해 “최소한 후보자 개인의 홈페이지를 통한 지지, 비판 제시와 토론의 기회조차 봉쇄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지극히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급심 판사들의 전향적인 법해석을 대법원이 경직된 법해석으로 퇴행시켰다”고 덧붙였다. 비평은 “이 두 판결은 법률을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중요한지 헌법의 시대적 요청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지 화두를 던졌다”고 밝혔다.
비평2 -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부분 삭제
하급심 전향적인 자세 대법원서 퇴행
두번째 비평은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다큐멘터리 부분을 삭제하라는 결정에 대해서는 “삽입 장면 때문에 관객이 영화를 실제 사건의 묘사로 인식한다는 논리적 비약에 따라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재판부는 관객과 영화를 주관적으로 단순화해 재판부의 존재 이유에 걸맞는 인권 보장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박근용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비평할 사건과 방향은 변호사 법학자들과 함께 토론해 결정한다”며 “앞으로 두달에 한 번꼴로 비평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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