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현대사는 한국영화의 자산이다 |
한국영화는 최근 놀라울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방화는 실패한다는 등식이 깨진 지 오래다. 잘 만든 한국영화는 1천만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우리 영화의 이런 수직 성장에는 수많은 요인들이 작용했다. 시각세대의 폭발적 증가와 이들 세대의 감성을 꿰뚫는 영화 제작자들의 높아진 역량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한국영화 1천만 시대’를 설명할 수 없다. 그 도약은 ‘역사’라는 소재와 ‘표현의 자유’ 신장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한국영화가 시각세대의 울타리를 넘어선 것은 그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와 맞닿아 있는 현대사를, 그것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룰 때였다. ‘1천만 시대’를 처음 연 <실미도>가 그렇고, 관객 최다동원 기록을 곧이어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렇다. 광주항쟁을 처음으로 정면으로 다룬 <꽃잎>이나,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도 마찬가지다. 이들 영화는 한결같이 아픈 현대사를 다루면서 예술적 감동과 간접적 역사체험이라는 두 기회를 한꺼번에 선사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가 ‘10·26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고 한다.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의 우려와 인격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행동은 한국 영화를 박정희 시대에 가둬 두려는 것 같아 안쓰럽다. 지금은 모든 사회적 금기가 작품의 소재로 다루어지는 열린문화의 시대다. 박씨는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로 만들어져 숨진 사람들을 희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소의 과장이나 왜곡은 영화적 표현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게다가 아픈 현대사는 우리 영화를 성장시키는 큰 자산이자 원동력 아닌가. 가처분 신청은 오래 전에 지나간 아버지 시대의 잣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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