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3 20:08
수정 : 2005.01.13 20:08
영화감독 임상수씨는 입이 걸다. 뭔가를 비판할 땐 가차없다. 욕도 표현도 거침이 없다. 몇 해 전 영화 주간지 〈씨네21〉로 파견 근무를 했을 때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죽어도 좋아〉에 대해 성기 노출을 이유로 극장 상영을 못하게 한 일이 터졌다. 이 문제로 대담을 마련하면서 그를 만났다. “왜 ×지, ×지 보기를 두려워하지? 나는 내 것은 매일 보고, 내 마누라 것도 가끔 보지만. … 그걸 보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도대체 뭐지?” 받아적던 나는 웃으면서도 좀 찜찜했다. “이거, 그대로 써도 될까?” 바로 튀어나온 그의 말. “왜 기자가 검열하고 지랄이야!”
그는 데뷔하면서부터 표현의 자유에 한이 맺혔다.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완성했는데, 등급심의 기관에서 등급을 내주질 않았다. ‘야한’ 장면을 잘라오라는 말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제작자가 직접 필름을 잘랐고, 임상수씨는 그 옆에서 고량주를 들이켰다. 그가 또 사고를 쳤다. 10·26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각본·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도 되기 전에 소송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시나리오를 구해 읽고서 지난 11일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다.
소송 이유는 이 영화 시나리오가 박 전 대통령을 △사생활이 문란하고 △일본을 동경하는 매국적 인물이며 △김재규에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인격의 소유자로 왜곡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판례는 공표행위가 공익에 부합하고, 그 내용이 사실이거나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공익에 맞아드는지는 박 전 대통령이 사소한 추문도 뉴스가 될 수밖에 없는, 아니 돼야 하는 공인 중의 공인인 만큼 쟁점이 되기 어렵다. 문제는 사실이거나 사실로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제작사인 명필름 변호인단은 당시 재판기록, 관료나 기자들의 회고록 등 이 요건을 충족시킬 자료가 두 상자 분량이라고 주장한다.
영화뿐 아니라 이 소송 자체가 관심을 끄는 건 표현의 자유가 국가보안법이나 음란법과 마찰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많았지만 명예훼손과 부닥친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례가 많지 않고, 이 때문에 창작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얼마 전 〈역도산〉을 제작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에게 “역도산 주변의 등장인물이 적더라”고 했더니 그는 “실제 인물 한 명을 끌어들이는 데 신경쓸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몇 해 전부터 실화를 다룬 영화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이 인물을 과감하게 재해석하는 데는 실패했다. 미국의 〈닉슨〉 같은 영화는 닉슨 전 대통령을 ‘마마보이’로 재해석한다. 미국은 명예훼손 소송을 내는 사람이 상대편의 악의, 곧 명예를 훼손할 의도를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보단 표현의 자유가 클 터. 오죽하면 악의만 없으면 된다는 태도로 선정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의 행태를 고발한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81년 작 〈선택〉(원제는 ‘악의의 부재’라는 뜻의 ‘Absence of Malice’) 같은 영화가 나왔을까.
그런데 10·26 당시에 표현의 자유는 어떠했던가. 79년에 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그해 10월27일 아침 등굣길 버스 안에서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란 긴급뉴스가 나왔다. 그때부터 버스를 내릴 때까지 버스 안에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10·26 사건의 진상에 대해 정부 발표 외에 국내 언론의 이렇다할 추적보도도 없었다. 2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영화로 만들어졌다. 임상수 감독이 연출 끝에 한 이런 말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죽었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심이 없는 건, 그걸 파면 더 끔찍한 게 나올 것 같아서 아닌가. 나는 그 끔찍한 걸 다 꺼내서 마주 대할 수 있을 때 한국 사회가 그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여하튼 소송은 제기됐고, 이젠 사법부의 몫이 됐다.
임범 문화생활부 차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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