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7.16 21:35
수정 : 2009.07.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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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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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한국을 치켜세워 화제가 되었다. 산업화 이전 한국은 케냐보다 국민소득이 낮았지만 지금은 훨씬 부유해졌다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따라야 할 모범 사례로 한국을 내세웠다. 1950년대까지 한국은 아프리카의 적잖은 나라들보다 가난했다. 더 가까운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나라로 필리핀이 자주 꼽혔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30년 가까운 기간 한국은 매년 6%대의 경제성장률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반면에 필리핀은 성장률이 2%에 이르지 못하였다. 이제 한국은 2만달러대의 소득을 자랑하지만 필리핀의 소득은 2천달러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필리핀과 한국의 경제적 운명의 갈림길에는 교육이 큰 구실을 하였다. 1960년 42%였던 한국의 중·고등학교 등록률은 1985년 95%로 뛰어올랐지만, 필리핀은 50%에서 65%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학 교육의 경우 한국은 1965년 6%에서 1992년 42%로 펄쩍 뛰었지만, 필리핀은 19%에서 28%로 거북이걸음을 하였다. 급속히 확장된 대중교육을 통해 배출된 산업 인력들이 한국 성장 신화의 주역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교육의 확장이 경제활동 기회를 균등하게 넓히고, 더 나아가서는 성장 과실의 분배까지도 고르게 하였다는 점도 한국의 성공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30년에 걸친 산업화 기간에 교육은 계층 간 격차를 완화하는 구실을 톡톡히 한 것이다.
필리핀과 한국의 교육적 성패를 갈라놓은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난데없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이룬 평등한 농지 분배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다. 부의 평등이 교육투자 평등의 기초가 된다는 이야기는 과학과 상식의 영역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대학이 쇠뼈를 갈아 세운 우골탑이라 불리던 때가 과히 오래지 않다. 소를 앞세워 논밭을 일군 농민 부모의 땀방울로 대학생 자녀의 학비가 마련되었던 시절이었다. 한국 사회 교육 평등의 바탕에는 남북한의 체제경쟁 속에서 이루어진 진보적 토지개혁으로 농지를 얻은 다수의 소농들이 있었던 것이다. 필리핀도 농지개혁을 거치기는 하였지만, 강력한 지주들에게 토지가 다시 집중되는 것을 막을 만큼 진보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 점은 1960년대 필리핀의 불평등도가 한국에 비해 훨씬 높았던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외환위기 이래의 10여년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편에서는 부의 불평등이 나날이 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비 부담이 커져만 갔다. 20조원을 넘어선 사교육비 대책으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이상 심각한 것이 공교육비 부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는 평균적으로 공교육비의 86%가 공적으로 지원되지만, 우리의 공적 부담률은 60%에 미치지 못한다. 대학 교육의 사정은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에서는 학비의 4분의 3이 공적으로 지원되지만, 우리는 반대로 그만큼을 개인이 부담한다. 정부가 교육비 지원에 뒷짐을 지고 있으니 이미 한해 1000만원에 다다른 등록금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계층간 격차가 커지고 교육 기회까지 소득계층에 따라 나뉘다 보니, 교육은 이제 계층 격차를 대물림하게 만드는 악역을 맡게 되었다. 교육기회의 균등이 아스라한 옛노래로 사라져가니 과거의 성장 신화에 대한 기대도 사그라진다. 빈부 격차와 교육 불평등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 하루도 늦출 여유가 없는 것이다. 교육에서 미래의 꿈을 열어주는 정부의 역할, 여기에서 서민을 위한 중도실용 노선을 시작해볼 만하지 않은가?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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