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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7:49 수정 : 2005.01.17 17:49

윗글은 저스틴이 이라크에서 아버지에게 보낸 이메일 가운데 일부, 아래는 저스틴이 이메일을 보낼 때 이용한 ‘야후(yahoo)’ 이메일 홈페이지 첫 화면.



산 자들의 갑론을박

저스틴 엘스워스(20) 미 해병대 상병은 지난해 11월13일 이라크에 간 지 2달만에 팔루자의 한 도로에서 폭발한 매설폭탄 파편에 맞아 숨졌다. 저스틴 상병은 숨지기 전 두달 동안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자메일(이메일)을 보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 존 엘스워스는 아들이 중동에서 보내거나 받은 이메일들을 모아 아들을 기념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저스틴이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한 ‘야후’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이메일 공개를 거부했다.

존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 이메일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알아내려고 몇주 동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존의 사연은 언론을 타고 세상에 알려졌고, 지금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여론은 ‘야후가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와 ‘사생활(프라이버시) 보호에 예외는 없다’로 양분됐다. 존은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다.

가족들에게 이메일이 중요한 이유=지난달 29일 <시카고 트리뷴>은 저스틴이 이라크에서 돌아오면 저스틴과 존이 주고 받은 모든 이메일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들기로 했었다고 전했다. 존은 “아들은 다름 세대와 미래의 역사를 위해, 그곳(이라크)에 있었던 누군가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저스틴은 거의 매일 기록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 왔다”고 <비비시>방송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머니 데비도 “아들의 생각과 느낌 등 어떤 것이라도 더 알고 싶다”고 말했다.

생생한 현장기록 담겨

존은 아들의 이메일 보관함에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저스틴에게 40명의 이메일 주소록을 만들어 주었다”며 “아들이 이라크에 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수많은 친구, 가족, 심지어 낯선 이들까지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기 때문에 수천통의 이메일이 보관돼 있을 것”이라고 <디트로이트 뉴스>에 밝혔다.


“상속권자에 공개를”- “비밀보호 예외없다”

저스틴의 가족은 이메일 내용을 모두 출력해, 가족과 이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 미래 세대를 위해 저스틴 기념 앨범에 붙일 계획이다. 군 당국이 저스틴의 다른 유품들과 함께 그가 썼던 컴퓨터를 전해 주기로 해 컴퓨터에 보관돼 있는 일부 자료는 건질 수 있지만, 가족들은 그걸로는 스크랩북을 만들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다.

야후 이메일은 사용한 지 9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없어지므로, 가족들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특수 상황이므로, 예외를 인정하라=법조계 일부 사람들은 이메일도 다른 유형재산처럼 죽은 사람의 소유물이므로, 사적재산 권리에 따라 상속권자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의 불행과 슬픔에 동정하는 사람들도 야후에게 이메일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존이 선임한 변호사 브라이언 데일리는 “은행이 이용자의 비밀번호 등 보안장치를 갖고 있다고 해서, 개인 계좌에 담긴 내용까지 은행이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현재 존을 아들의 법적 상속인으로서 공식 지정하는 ‘유언 검인’ 과정을 밟고 있으며, 저스틴의 이메일도 재산의 일부라는 점을 들어 야후가 가족에게 넘기도록 법정 명령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럴드 크렌트 시카고-켄트 대학 법학교수도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종이)편지는 보내는 사람에게 소유권이나 저작권이 없지만, 저스틴의 이메일은 이 경우 다른 소유물처럼 법적 상속권자인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네티즌 의견도 엇갈렸다. 정보통신 전문 사이트 ‘제트디넷’ 게시판에서 아이디 ‘캐런’은 “만약 야후 최고경영자의 아들이 죽었다면, 그는 이미 아들의 이메일을 보았을 것이라 확신한다”며 “야후여, 동정심을 가지시오”라고 말했다.

개인비밀 보호에 예외는 없다=반면 한 가족의 비극 때문에 수천만명의 사적 권리를 희생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에서 야후 이메일을 이용하는 사람은 약 4천만명으로, 이들은 이메일 서비스 가입 당시 개인정보와 관련된 야후 규정에 동의해야 한다. 야후 가입 동의 조항에는 “야후 메일은 다른 누구에게도 양도되지 않고,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이 쓴 모든 내용에 대한 권리도 사라진다’는 문구가 있다.

메리 오사코 야후 대변인은 “심정적으로는 엘스워스 가족에게 동조하지만, 이메일은 많은 이용자들이 그들의 의사소통 내용이 보호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라며 가족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시카고 트리뷴>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오사코는 죽은 이의 이메일에 저장된 내용을 달라는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크 로텐버그 ‘일렉트로닉 프라이버시 인포메이션센터’ 전무이사는 “한 번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사적 권리 보호 원칙은 금새 붕괴될 것”이라며 “야후의 조처가 옳다”고 말했다.

네티즌 ‘스박스’도 ‘제트디넷’ 게시판에서 “누구든지 죽은이의 가족이라고 주장하며 이메일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야후 조처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존은 저스틴의 이메일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 여러 문자조합을 만들어 시도하고 있다. (해킹 등을 통해) 비밀번호 알아내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몇 번 받았지만, 존은 이 문제를 정당한 방법으로 야후와 해결하기를 원한다.

야후에선 전자우편 공개 거부

저스틴의 가족과 야후 사이에 전혀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후 개인정보 보호 관련 조항에는 “야후는 법이나 ‘좋은 의도’에 의한 요구라면 당신의 이메일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문구가 있고, 이 때문에 경찰은 범죄 용의자 등의 이메일을 열어볼 수 있다.

프라이버시 관련 전문가들은 “이메일 내용을 본인이 죽은 뒤 법적 상속인에게 양도하기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정하도록 이메일 정책을 더 명확히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니얼 솔로브 조지워싱턴대 법과 교수는 “이 문제는 야후나 가족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아니라, 고인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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