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7 19:10
수정 : 2005.01.17 19:10
올해는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하고 ‘조선’이 독립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60년 가운데 50년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해 반성·사죄하지 않은 시기다. 이것은 또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지 않은 20년과 반성·사죄 없이 국교가 정상화된 30년으로 나뉜다. 그리고 마지막 10년은 “우리나라는 …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 아시아 여러나라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 나는 …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뜻을 표명한다”라는 총리 담화,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은 뒤의 기간이다.
이 10년 동안 일본은 새 정부 견해를 바탕으로 국민을 결속시키고 주변국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나아가지 못했다. 이 견해를 둘러싸고 격렬한 대립이 터져나와 일본이 찢겨진 세월이었다. 1995년 8월15일의 무라야마 담화는 98년 10월8일의 한-일 공동선언에서 확인되고, 2002년 10월17일 북-일 평양선언에서 재확인됐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이후 4명의 자민당 출신 총리들은 이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혔다.
다른 쪽에선 96년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기술을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반동세력이 2000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갖고 등장해 무라야마 담화에 도전했다. 이들의 교과서는 일선 학교에서 거의 채택을 거부당해 첫 라운드가 끝났지만, 2002년 납치문제를 계기로 한 북한 배격운동에 합류하면서 제2 라운드가 시작됐다. 그 흐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원래 일본 국민의 과반수는 무라야마 담화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이 다수파가 분열해 강력한 반동세력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파 분열의 한 계기는 군대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아시아여성기금과 이를 비판하는 운동단체가 갈라선 것이다. 군대위안부 문제 해결에 노력해온 일본 여성단체는 한국·대만·필리핀의 운동단체들과 함께 정부의 구상, 여성기금의 활동방침에 대해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 단체는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인정하도록 촉구하면서, 도덕적 책임을 얘기하는 것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책임 회피의 수단이라고 비난했다. 또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죄는 의미가 없고 △일본 국민의 모금에 의한 ‘보상금’은 단순한 ‘위로금’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일본 정부의 의료복지 지원도 보상 회피라는 주장을 펴면서 여성기금을 전면 부정했다. 이들은 일부 피해자가 여성기금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렇게 하지 말도록 설득했다.
한국의 운동단체들은 그 뒤 책임자 처벌이라는 요구를 내걸고 유엔 인권기관에 호소해 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98년 맥두걸 보고서가 나오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 여성단체와 함께 2000년 12월 ‘일본군 성노예제를 재판하는 여성 국제전범 법정’을 열고 일왕 이하 군 수뇌부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일본의 재판소에 이들이 제기한 소송은 몇차례나 패배했지만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소송은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과 대만의 운동단체로선 일본 정부가 배상을 할 때까지의 대체보상금, 또는 여성기금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을 대신하는 보상금으로서 자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일시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기금이 한국·대만·네덜란드·필리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벌여온 보상사업은 이제 끝났다. 네덜란드에선 79명에게 도의적 책임론에 입각해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와 함께 일본 정부기금에 의한 의료복지 지원사업의 ‘프로젝트 머니’가 지급됐다. 한국·대만·필리핀의 285명에 대해선 총리 편지와 국민들이 낸 보상금이 지급됐고, 정부 자금에 의한 의료복지지원이 서비스와 현금으로 실시됐다.
필리핀에선 신청을 한 사람들 중 필리핀 정부가 대상자로 인정한 사람 전원이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한국에선 신청한 사람이 한국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의 과반에 이르지 못했다. 필리핀에선 여성기금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피해자가 희망하면 운동단체들도 이를 받아들여 신청을 도왔다. 반면, 한국·대만에선 여성기금의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그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최소한의 사회적 승인도 얻지 못한 상태다.
이런 결과를 전체적으로 볼 때, 과거 10년 동안 군대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 노력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선 국민적 화해를 위한 바람직한 공헌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여성기금에 관계해왔던 나는 이 결과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다. 여성기금은 군대위안부 문제에서 한국인들과의 화해에 접근하지 못했다.
여성기금은 머지않아 해산될 것이지만 여성기금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할머니들을 이 상태로 두는 것은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명예회복을 바라 온 이 사람들이 일본 총리의 사죄 편지를 받은 사실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슬프다. 이 점만은 어떻게든 개선해 두 나라의 화해를 진척시켜 나가는 것이 일본 반동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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