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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14 19:41 수정 : 2005.06.14 19:41

지난주말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획기적인 선언이나 공동성명은 없었으나 분위기는 좋았고 메시지도 분명했다. 북한 핵 문제를 평화·외교적으로 해결하며, 한두 가지 이견은 있으나 한-미 동맹은 돈독하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별로 새로운 내용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 모두 ‘한-미 동맹이 매우 강하다’고 했지만, 드러나는 마찰음을 줄였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작계 5029’ 문제는 동맹의 성격을 명확하게 재정립하지 않는 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다행스런 것은 동맹이 조정기에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런 면에서 한-미 동맹은 아직 건강하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을 전제로 언급한 ‘북-미 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 추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것일 뿐 미국이 지난해 3차 6자 회담 때 제시한 내용과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미국은 새로운 대북 유인책은 고사하고 ‘핵포기 먼저, 보상 나중’이라는 기존 자세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북한이 끈질기게 요구해온 체제안보 문제도,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이전의 언급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다른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시도할 여지는 여전히 남겨놓은 셈이다.

대신 부시 대통령은 오는 21~24일 열릴 남북 장관급 회담을 포함해 지금 진행 중이거나 예정돼 있는 모든 남북 교류에 대해 포괄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이 개성공단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심도 일단 수그러들었다. 우리 정부가 미국 쪽에 더는 구체적인 대북 제안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남북 화해·교류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 꼴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을 이어받은 평화번영 정책이 기본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강경정책, 곧 힘을 바탕으로 하는 압박정책을 선호한다. 따라서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두 정책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다. 그러다 보니 두 나라의 관계는 삐걱거렸고, 현정부 들어 이뤄진 세 차례 정상회담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좁은 공간 위에서 균형점을 찾았다.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부시 행정부로선 한국 쪽에 기회를 주는 모양새를 취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북한이 6자 회담에 나온다면 그것으로 좋고, 계속 회담을 거부한다면 본격적인 강경책에 시동을 걸 수가 있다. 이번 회담의 일정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6·15 민족통일대축전과 장관급 회담 이전에 정상회담을 해야 할 이유는 미국 쪽에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화기애애했던 이번 회담 이후 부담이 커진 것은 우리 정부다. 북한을 6자 회담에 불러내지 못한다면, 남북 및 한-미 관계 두루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그제 “이제 남북한이 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런 긴장감을 반영한다. 치열한 실천이 뒤따르길 바란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전보다 진전된 제안이 없었던 점이 불만일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남북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공조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리기에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 2005년 6월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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