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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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끝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신의주 특별행정구 사건’과 비교해보면 북한의 선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2002년 9월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신의주 특구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자체 입법·행정·사법권을 갖는 개방지역을 만들어 대규모 외자를 유치하겠다는 내용이다. 홍콩과 마카오가 모델이니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특구 초대 행정장관으로 내정된 양빈이 10월 하순 중국 당국에 구속됨으로써 본격 출발도 하기 전에 좌초했다. 양빈은 네덜란드 국적 중국인으로 농업사업으로 큰돈을 번 젊은 기업인이었다. 김 위원장은 2001년 1월 중국 상하이의 ‘천지개벽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신의주 개방을 마음먹게 됐다고 한다. 이후 신의주 특구와 맞먹을 만한 개방 구상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북한의 충격이 짐작이 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에서 동북3성 가운데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주요 도시들을 집중적으로 찾았다. 신의주와 접한 랴오닝성은 지난 5월 방문했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 “북한은 동북지방과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개발방법과 경험을 열심히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월 방중 때도 “동북지역의 급속한 발전은 중국 당과 정부가 제시한 동북진흥전략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동북전략과 연계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중국의 협력을 구한 것이다. 북한의 이런 모습은 그간 중국내 다양한 성장지역을 검토했으나 결국 동북3성을 모델로 삼게 됐음을 보여준다. 또한 신의주 특구처럼 너무 의욕만 앞세운 태도에서 벗어나 중국의 영향력을 적극 인정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계속되는 경제난에다 후계체제 안정 문제까지 겹친 북한으로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사실 지금 북한에게 상하이나 홍콩은 너무 먼 목표다. 동북지역만 해도 만만치 않다. 동북3성은 북한의 6배 반 넓이에 5배의 인구를 갖고 있다. 세 성이 모두 북한보다 인구가 많고 경제력이 크다. 발전 속도로 볼 때 시간도 중국 편이다. 북한이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동북3성과의 연계 발전을 추구하는 것에 비례해 ‘북한의 동북4성화’가 진행될 것이다. 중국은 이를 꺼릴 이유가 없다. 중국은 과거 한반도 경제권이 동북지역으로 확장될까봐 우려했다. 하지만 이번에 김 위원장이 귀국 길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지나가도록 동의한 것만 봐도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이 엿보인다. 북한의 선택은 소련 붕괴 이후 20년 가까운 경험을 통해 얻은 귀결이다. 북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의 경협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 경협에 대해서도 북쪽은 항상 속도가 늦은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은 이제 기댈 상대는 중국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북-중 관계에서 온갖 갈등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북한의 대중국 접근에는 중국의 구심력과 한국·미국의 강경 대북정책으로 인한 원심력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 양쪽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중국과 미국 신문의 지난 30일치 사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중국의 반관영 영어신문인 <글로벌 타임스>는 “북한은 동북아의 살아있는 변수”라며 “북한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국이 지역의 국제문제에서 주도권을 잡는 데 유리하다”고 했다. 반면 미국 강경파를 대변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은 “북한 정권의 사망을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압박을 지속”하고 “한국이 이미 하고 있는 대로 (북한의) 붕괴에 대비”할 것을 버락 오바마 정부에 요구했다. 통일의 두 주체인 남북은 서로를 밀어내고 북쪽은 사실상 중국 동북지역의 일부로 흡수돼간다. 이런 현실을 그냥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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