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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8 19:16 수정 : 2005.01.18 19:16

1964년 8월2일, 미국 국방부는 자국 구축함 매덕스가 베트남 통킹만에서 북베트남군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나중에 미국의 계획적인 도발에 의한 조작 사건임이 폭로됐지만, 이른바 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미국은 베트남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했다. 사흘 뒤인 5일, 미군은 북베트남 해군기지와 석유저장소를 폭격했다. 6일, 중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침략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같은달 28일 ‘평화헌법’이 무색하게 일본은 미국 원자력 잠수함의 기항을 허용했고, 두 달 뒤인 10월31일 한국 정부는 베트남에 국군을 파병하는 협정을 맺었다.

지난 17일 40년 만에 관련 문서들이 처음 공개된 ‘한-일 협정’이 체결된 것은 그 다음해인 65년 6월이었다. 50년대 초부터 일본 점령 미군이 강력하게 종용해 왔던 한-일 수교는 47년 미국이 냉전태세를 본격화하면서 일본을 동아시아 전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일본 개조’를 포기하고 전범자들을 재기용하는 이른바 ‘역류’ 정책을 쓰면서 이미 예견됐다. 미국으로서는 일본이라는 친미 국가를 다시 키울 필요가 있었으며, 그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야 했다. 역사적 정의 따위는 무의미했고, 중요한 것은 미국의 이익이었다. 51년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미국이 조약 초안에 전승국으로 포함시켰던 한국을 일본의 항의를 받자 빼버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05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45년 일방적인 한반도 분할 점령처럼 미국은 그와 동일한 패턴의 한반도 정책을 이미 그 전부터 반복해 오고 있었다.

한-일 협정 체결 20년 뒤인 85년 3월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그 다음달 당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보고서 ‘역사적 전환기에 처한 우리의 과제’를 발표했다. 그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으로 미-소 냉전체제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4년 뒤인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지난 17일 타계한 자오쯔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실각으로 내몬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것은 그해 6월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 등장 뒤 20년이 지난 2005년.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1월1일치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자유로운 시장’ ‘자유로운 자본이동’이야말로 최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이제 그 열병에서 깨어나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해내야 한다.” “세계는 지금 역사상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불균형 속에 있다. 그 상징이 미국의 거대한 경상적자다.” “아시아 역내 중심은 서서히 바뀌어 간다. 지금은 일본과 중국이 대등하지만, 10년 뒤 아시아 경제의 중심은 중국이 될 것이며, 일본은 격이 떨어진 파트너가 될 것이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 전문가들은 한 나라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데는 통상 1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소련 붕괴 뒤 15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 아래 경제혼란을 수습하고 중국, 유럽과 새로운 다극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장래에 대한 전망은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의 대다수 기관·전문가들도 크루그먼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 통합된 유럽은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미국은? 미국 상무부는 지난 12일 미국의 지난해 11월 무역적자가 603억달러, 1~11월 누적적자가 5613억달러라고 발표했다. 2004년 전체 무역적자가 사상 처음으로 6천억달러를 넘어선다는 얘기다. 미국이 국외에 투자한 자본에서 타국이 미국에 투자한 자본을 뺀 미국의 순투자자산 규모는 89년까지는 플러스였다. 그러나 지난해엔 국내총생산(GDP)의 24%에 이르는 3조3000억달러 마이너스였다. 이대로 가면 미국 경제가 지탱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조지 부시 정권은 군사적 공세로 이런 약점을 만회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모순은 깊어갈 뿐이다. 크루그먼은 지금이 지난 세기 20년대의 대공황 전야와 닮았다고 했다.

지난 40년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고 한국도 전날의 한국이 아니다. 냉전붕괴 뒤 15년이 지난 지금 동아시아 파워게임 참가자들의 위상도 급변하고 있다. 21세기 초두 달라진 조건에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 이 게임에서 판을 흔들 정도로 강력한 변수의 하나는 남북이 처음으로 단일 선수단으로 참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한승동 국제부장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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