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1 20:19
수정 : 2011.03.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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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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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기 논설위원
최근 원자력발전 르네상스가 일었던 것은 치솟는 원유값 때문이었다. 국제 원유값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니 위험하더라도 원전을 짓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실제로 원유 발전 단가는 1㎾h당 184.5원으로 원자력의 34.4원에 비해 5배가 넘는다. 최근 3~4년 사이 원유값이 두배 이상 오른 탓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로 원전 르네상스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원전은 당장 값싸고 공해 없는 에너지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그 몇 배의 비용이 들고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 냉정하게 보자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연이 아니다. 확률상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다. 또한 원자력 발전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원전은 그렇게 값싼 에너지만은 아니다.
사고 여파는 원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원전에 몰리던 발전 수요가 다시 원유와 석탄으로 쏠릴 게 분명하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화석연료의 가격 급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치솟는 원유값에 불을 붙인 꼴이다.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 대국인 우리로선 어떤 방식으로든 에너지 정책을 재점검해야 할 시기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사용한 원유는 8억7000만배럴, 686억달러어치에 이른다. 석탄·가스 등을 합쳐서 에너지 수입에 들어가는 총비용은 1217억달러, 석유제품 등 에너지 수출액 317억달러를 뺀 순수입액은 900억달러다. 가격이 10% 오를 때마다 100억달러씩 외화가 추가로 새나가는 꼴이다. 국가경제에 큰 부담일 뿐 아니라 물가를 끌어올려 서민 가계를 바로 압박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태평하다. 값싼 원자력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는 식이다. 원자력이 공해 없는 녹색 에너지라는 ‘상식 이하’의 말도 여전하다. 이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2000년대 들어 개선되어온 에너지 소비의 효율성이 현정부 들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별 에너지 소비 효율성을 보여주는 에너지원단위(TOE/국내총생산 1000달러)는 2007년 0.253에서 2010년 0.257로 악화됐다. 에너지탄성치(에너지소비증가율/경제성장률)도 2007년 0.8에서 2010년 1.15로 급격히 악화했다.
주범은 기업이다. 최종 에너지 소비량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55.2%에서 2010년 59.3%로 증가했다. 반면 가정·상업용은 21.6%에서 19.6%로, 수송용은 20.8%에서 18.8%로 줄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에너지 사용에서 큰 혜택을 받고 있다. 전기와 액화천연가스(LNG) 요금이 좋은 사례다. 전기는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26%, 액화천연가스는 산업용이 취사용보다 7% 저렴하다. 과다한 에너지 사용의 주범은 기업인데 그 경제적 부담은 국민이 지는 셈이다. 그뿐 아니다. 전력 부족으로 원전을 더 짓게 되면 일본과 같은 사고의 위험부담은 국민이 져야 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잘못된 국내 에너지 가격 구조를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들에 값싼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주력해온 정부의 공급 위주 에너지 정책을 수요 관리(억제)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해법은 산업용 에너지 요금 인상에 있다. 그래야 공정한 수익자 부담 원칙이 관철되고, 절전형 기기로의 설비 혁신을 유도할 수 있다.
추가 원전 건설에 대한 논란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논의의 초점을 제대로 잡는 일이다.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통해 에너지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게 가장 시급하다. 지금처럼 에너지 사용량이 급증하면 추가 원전 건설을 막을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나 에너지 자급률 제고도 대안이 되기 어렵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 효율은 일본의 3분의 1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안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선진국을 바라본다면 적어도 꼴찌만은 면해야 하지 않겠는가.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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