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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2 19:40 수정 : 2011.06.02 19:45

한승동 논설위원

천안함 사태를 얼버무리고 무리수까지 동원해가며 정상회담을 ‘애걸’하게 만든 건 뭘까?

지난 주말 자유로를 달려 임진각 망향의 노래비 앞에 다시 섰다. 스테인리스 상자에 달린 빨간 단추를 누르자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 흘러나왔다. ‘뽕짝’의 그 ‘청승’만큼 곡진하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1983년의 ‘이산가족 찾기’ 드라마는 쇼크였고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그 세월은 그로부터 어언 30년이 더 흘렀다. 잃어버린 60년! 생이별한 ‘1000만 이산가족’ 중에 아직 살아남은 이 얼마나 될까.

지난달 중순 뉴욕주 아몽크 자택을 찾아간 권태호 특파원에게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국대사는 “한국의 분단은 미국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5·16 쿠데타 50주년 취재차 찾아간 기자에게 그는 왜 굳이 그 얘기를 했을까. 긴 인터뷰 기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터뷰 후기’에 실린 그 짤막한 얘기였다. 그런 얘기를 그 정도나마 공개적으로 한 미국인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총책(1973~76년)이었고, 국가안보회의 참모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안보담당 보좌관을 거쳐 주한대사(1989~93년)를 지낸 그는 2년 전까지 한-미 교류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이었다. 한국전 참전용사에 중앙정보국 밥만 30년을 먹은, 한국 사정에 누구보다 밝은 그가 남긴 또 하나 인상적인 얘기는 역시 인터뷰 후기에 담긴 “나는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본다”는 한마디였다. 그는 실은 천안함 사건 직후부터 그 얘기를 했다. 놀랍게도 그는 북한 소행이라는 한국 정부 공식 발표와 5·24 조처가 나온 뒤에도 여전히 그 소신을 버리지 않았고 언론에 밝히기까지 했다.

괴이쩍은 남북 비밀접촉에서도 핵심 쟁점은 결국 천안함 사태였다. “(남쪽은) 북쪽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쪽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내놓자면서 제발 좀 양보해 달라고 애걸했다”고 북은 폭로했다. 일부 주장대로 범행 사실을 은폐하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북의 계산된 ‘깽판놓기’일까. 아니면 그레그의 말대로 범인은 북이 아닌 걸까. 우리는 아직도 그 실체를 모른다. 이 미스터리의 실체에 오늘날 남북관계의 본질이 응축돼 있다. 절충해서 적당히 얼버무리고 간다면 두고두고 당사자들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얼버무리고 무리수까지 동원해가며 정상회담을 ‘애걸’하게 만든 건 뭘까. 역시 내년 총선, 대선을 겨냥한 걸까. 정부의 대북정책이 고작 정권안보 차원의 저급한 정치공작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난 대선 뒤 사람들은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현 집권세력이 평양을 향해 이전 정권과는 차원이 다른 자본의 대공세를 펼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과 베트남과 동유럽을 바꾼 것도 무력이 아니라 자본이었다. 후나바시 요이치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최근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재건의 방도는 중국에 다가가는 것뿐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용인 것이다. 그런데 실용을 노래했던 현 정권이 정작 택한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중국과 베트남에 투입한 자본의 몇 분의 일만이라도 평양과 개성에 쏟아부었다면 남북은 지금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각자 찢어져 중국으로, 미국으로 달려가는 몰골을 면하고 함께 동아시아 정세 재편의 유력한 플레이어가 돼 있지 않을까. 비밀접촉 소동은 그 모든 가능성을 날려버린 이명박 정권 대북정책 실패를 최종적으로 고하는 장송곡처럼 들린다.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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