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21 17:56 수정 : 2005.01.21 17:56

‘자유’라는 말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세계사는 곧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도 한다. 1776년 미국 독립을 ‘혁명’이라 부르는 것도, 그것이 중세의 억압을 뛰어넘어 자유를 시민계급에까지 확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건국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미국 대통령들의 약속이 나름의 보편성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20일(현지시각) 조지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면서, 세계인들은 가슴 설렘보다는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그의 취임사엔 ‘자유’란 단어가 27번이나 나오지만 그 진정성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탓이다.

자유를 전파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일방주의적 방식과 기준이다. 2002년 이라크 침공은 대표적 사례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줬다고 주장하지만, 지금 이라크 현실은 미국이 이식한 ‘자유’가 어떤 불행과 혼란을 가져오는지를 잘 보여준다. 부시의 연설을 보면, 자유의 잣대는 미국만이 전유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이건 언제든지 이중 잣대로 사용될 수 있다. 북한과 이란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면서,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돕는 파키스탄이나 이집트의 비민주적 체제엔 눈을 감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의사당 광장과 마주 보이는 저 멀리 서쪽 편엔 링컨기념관이 서 있다. 1963년 이곳에서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자유를 말했다. “콜로라도에서도, 미시시피에서도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하자.” 그의 외침은 미국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를 감동시켰다. 40년 뒤 부시 대통령의 자유 외침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정서는 다르다. 미국 내부에서조차 싸늘한 반응이 적지 않다.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가 미국 안전을 위한 치장거리로 전락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6g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