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23 21:49
수정 : 2005.01.23 21:49
엘지텔레콤과 케이티에프의 ‘지상파 디엠비’ 유료화 필요성 거론으로,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방식 논란 때와 비슷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통사들은 방송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계기를 설치해야 하는데, 재원을 확보하려면 유료화가 필요하단다. 이왕 허가되는 것이니, 잘되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동통신 업체들이 나서줘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이들은 “방송사는 중계기를 설치할 능력이 없다”는 전제를 깔아 지상파 디엠비 유료화 불가피론을 펴기도 한다. 중계기 설치에 600억원 가까이 든다며, 월 4천원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도 ‘부분 유료화 필요성’을 언급해 장단을 맞춘다. 이제는 거꾸로 유료화를 처음 거론한 이통사 쪽에서 진 장관의 발언을 들어, 지상파 디엠비 유료화가 대세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동통신 업체들의 지상파 디엠비 유료화 필요성 주장과 진 장관의 부분 유료화 발언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생뚱맞기’ 그지 없다. 남의 다리 긁는다는 말에 딱 들어맞는 사례다.
지상파 디엠비는 방송이다. 정부가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방식의 표준을 미국식으로 정하면서, 이동할 때 시청이 어려운 단점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도입했다. 방송의 보편성은 어떤 경우라도 훼손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시민단체, 시청자, 방송 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4년 가까이 싸워 얻어낸 것이다.
이런 탄생 배경으로 볼 때, 지상파 디엠비는 “방송의 보편성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방과정에서 보편성이란 전국 어디서나, 돈없는 사람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합의되기까지의 시간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은 업체들도 무수히 많다.
정통부 장관과 이동통신 업체들이 지상파 디엠비 유료화 필요성을 언급하는 것도, 방송위원회와 방송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지상파 디엠비의 품질을 걱정하는 태도도 우습다. 방송사와 방송위원회가 걱정해야 할 일을 자청해 떠맡은 모양이다.
지금까지의 합의대로라면, 지상파 디엠비 업체들의 주요 수입원은 광고료다. 광고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많아야 하고,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좋은 내용(콘텐츠)을 어느 곳에서나 선명한 화질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지하나 건물 안에서도 시청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중계기를 설치해야 한다.
지상파 디엠비 업체들이 광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중계기를 설치할 수밖에 없다. 위성 디엠비와 경쟁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중계기 설치에 들인 비용은 늘어나는 광고료로 충당하면 된다. 방송위원회 역시 규제·감독기관의 처지라 품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유료화는 지상파 디엠비에 포함된 사회적 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상파 디엠비 사업 모델의 뼈대를 뒤흔드는 것이기도 하다. 지상파 디엠비 유료화 욕구는 방송사와 방송위가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탄생 배경을 알기에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 유독 이 건에 대해서는 영역침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런 속내를 엿보게 한다.
지상파 디엠비 중계기는 방송장비라, 이통사가 설치할 수 없다. 이통사들도 이를 잘 안다. 그런데도 나서는 이유는, 방송사와 방송위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월 몇천원의 부가서비스 매출을 올리는 기회를 얻어보자는 심산이다.
일부 이통사와 진 장관이 방송사와 방송위에게는 ‘백기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 쪽에서 보면, 당장의 작은 이익을 위해 엄청난 희생까지 치르며 어렵게 이룬 사회적 합의까지도 묵살하는 존재로 비치기에 충분하다. 유료화할 거라면, 지상파 디엠비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남 걱정 말고 이동통신 품질이나 높이라!” 한 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 있는 말이다.
김재섭/정보통신전문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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