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1.27 22:05 수정 : 2005.01.27 22:05

천성산 고속철 터널과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 일각에서 난무하고 있는 갖가지 오해와 음해에 대해 좀 다른 측면들을 짚어보자.

일부에서는 도롱뇽 몇마리 살리려고 엄청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고 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과 지난해 11월 재판부 판결요지의 핵심은 도롱뇽이 아니라, 천성산과 인근 정족산에 위치한 고산습지가 터널공사로 인해 영향을 받을 소지가 있느냐는 점이다. 고속철 공사계획이 발표되고 환경영향평가가 시행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인데, 그 이후 천성산 화엄늪과 정족산 무제치늪이 발견되고 높은 생태적 가치가 인정되어 1998년과 2002년 각각 법률로써 생태계보전지역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고속철은 이 두 고산습지의 지하를 관통하게 되어있다. 고산습지는 우리나라 1만년 자연 기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자, 아직도 잘 모르는 희귀 생물종들이 서식하는 보고라는 점에서 국가가 법률로 보호하고 있다.

문제는 이 터널공사가 혹 천성산과 정족산의 복잡한 지하수 수맥을 끊어서 습지로 공급되는 물이 차단되면 습지가 손상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시공 측은 습지의 물이 빗물로만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하수와는 상관없다고 하고, 지율스님 측은 여러 가지 경험적 증거들을 보건대 지하수맥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경험적 증거는 한겨울에도 산꼭대기 습지의 물이 얼지 않고, 천성산은 정상부에도 물이 풍부하게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천성산에 자주 가는 등산인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두 가지. 첫째, 공사가 예정되어 있던 상황에서 엄청난 가치를 갖는 자연유산이 발견되었을 경우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가. 터널이 습지에서 지하로 300~500m, 수평거리로 900~2700m나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것만이 공사강행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확률적으로 공사가 습지를 망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불확실성이 100% 해소되기 전에는 아무도 그 뒷일을 보장할 수 없다. 습지와 생물종의 생명가치는 논외로 하고 세속적인 차원에서 말해 그것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경제적 가치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희귀한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것도 그 속내는 그 속에서 귀중한 자연정보 또는 신물질을 추출하여 미래에 가져다줄 수 있는 천문학적인 가치 때문이다. 공사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수천억이나 수조원이나 하는 숫자들도 그러한 잠재적 가치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6개월의 시간적 지연 주장은 더더욱 의미없는 이야기다.

둘째,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쉽지 않지만 경험적으로는 입증 가능한 경우, 이런 경험적, 토착적 지식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지금 환경영향평가를 중립적인 위치에서 다시 해보자는 주장도, 과거의 환경영향평가와 2002년에 있었던 지질공학회 조사에서 빠져있던 이런 사실들을 검증하자는 것인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특히 환경문제는 자연계에 내재한 복잡성 때문에 단선적인 과학적 주장과 입증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경험적 지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전세계적으로 환경정책에 있어 ‘사전예방의 원칙’은 이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복잡한 자연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대한 변형행위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자연환경에 대한 현대과학지식이 아직 한계가 많고 또 한번 잘못된 자연은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판부에서는 공사 중단으로 인한 공익적 손실이 확률 낮은 환경적 피해 개연성보다 훨씬 크다고 판결을 내렸지만, 선진 국가일수록 후자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시대적인 추세이다. 6개월이라는 길지도 않은 시간을 갖고 검증해 볼 기회도 주지 않는 우리 정부와 재판부의 입장은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마디. 지금은 시대적 고전이 되었지만, 미국의 여성 과학자 레이첼 카슨이 1962년 화학물질과 농약의 건강 및 생태파괴성을 경고한 <침묵의 봄>을 발간했을 때 일부 논자와 화학산업계는 카슨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과학적 신빙성을 믿을 수 없으며 심지어는 히스테리를 부리니 레즈비언이니 빨갱이니 등의 악의적인 음해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후에 카슨의 주장들은 사회적으로 모두 입증되고 인정되었다. 허남혁/대구대학교 강사·지리학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