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26 20:52
수정 : 2019.03.26 20:54
국민연금이 27일 열리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했다고 한다. 국민연금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26일 회의에서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을 논의한 결과, 반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데 따른 방침이다. 횡령·배임을 비롯해 조 회장에 얽힌 여러 혐의와 국민연금의 행동지침(스튜어드십 코드)에 견줘 보면, 당연한 결정이라고 본다.
국민연금의 재선임 반대에 따라 조 회장은 재벌 대기업 총수로선 이례적으로 주총장의 표 대결을 통해 이사직에서 밀려날 위기에 빠졌다. 조 회장이 재선임되려면 대한항공 정관에 따라 주총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으로부터 찬성을 끌어내야 한다. 주총장에 70%(지난해 주총 때 65%)의 주주가 참석한다고 가정할 경우 조 회장은 연임을 위해 46.7%의 지지가 필요한데, 조 회장 일가와 한진그룹 계열사 등 우호세력의 보유 지분은 33.3% 수준이다. 국민연금 지분은 11.7%에 이른다. 조 회장으로선 만만치 않은 벽에 부닥친 셈이며, 이는 결국 자업자득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조 회장은 기업에 손해를 끼친 여러 행위로 법적 시비에 얽혀 있다. 2003~2008년 대한항공이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와 기내 면세품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개인 소유회사인 트리온무역을 끼워 중개수수료 명목으로 ‘통행세’ 196억원을 부당하게 챙기는 등 회사에 총 274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횡령)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게 한 예다. ‘기업 가치의 훼손 내지 주주 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이사 후보에 대해선 반대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활동에 관한 지침’ 30조(이사 선임)와 충돌하는 지점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나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아이에스에스(ISS),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같은 국내 의결권 자문사들이 조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한 배경이다. 국민연금이 이런 권고를 무시하고 찬성하기로 결정했다면 큰 논란을 불렀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다른 사안에서도 기관투자자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회사에 손해를 끼친 장본인을 경영진에서 배제하는 것은 회사 가치를 높이고, 연금의 실제 주인인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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