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연금, ‘적극적 주주활동’ 지침 용두사미 안 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와 직원연대지부가 지난 1월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플라자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종 불법과 갑질 혐의가 드러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해 국민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행사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와 직원연대지부가 지난 1월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리는 서울 플라자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각종 불법과 갑질 혐의가 드러난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해 국민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행사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지침)’ 제정이 경영계의 반대로 연기됐다. 지침은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위해 지난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가 실효성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어서, 경영계의 “경영권 침해”라는 궤변에 밀려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29일 지침을 심의했지만 경영계가 “기업경영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반대해 의결을 못 하고 재논의하기로 했다. 지침의 핵심은 불합리한 배당 정책이나 횡령·배임 등으로 주주 이익이 훼손된 기업을 중점 관리하고, 개선 의지가 없으면 이사 해임이나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다. 이는 635조원의 국민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데 따른 후속 조처다.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투자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해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높이고 투명경영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는 대주주의 전횡이 심하고 기관투자자들이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거셌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다.

국민연금이 올해 초 국민적 분노를 낳은 한진 총수일가의 불법과 갑질 사태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등기이사 연임에 반대하는 최소한의 행동에 그친 것은 지침 제정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삼성이 2015년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을 불공정하게 정한 것을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국민 노후자금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자초한 참사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계와 보수언론이 “경영권 침해” “기업 옥죄기로 경기 회복에 찬물” 등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심지어 영국·일본 등 선진 자본주의국이 시행 중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연금사회주의’라고 공격하는 궤변까지 펴고 있다.

국민연금의 지침을 명확히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하루 앞서 “기업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주주권 행사를 더 엄격한 요건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게 걸린다. 혹여 경영계의 억지와 궤변에 밀려 지침이 용두사미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