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0 18:35
수정 : 2019.12.21 02:32
집은 거주의 공간이다.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 재산 증식 수단이 아닌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집은 다른 재화와 달리 수요가 는다고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 집을 지을 땅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서울처럼 많은 사람이 살기 원하는 곳일수록 더 그렇다. 한 사람이 집을 여러 채 가지면 다수가 내 집 마련 기회를 잃는다. ‘집 없는 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주택 소유 통계’를 보면, 2018년 11월11일 기준 서울의 주택 보유자 중 서울에 2채 이상 집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 비율이 15.8%다. 38만9천명의 다주택자가 96만8천채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살지 않는 집을 판다고 가정하면 약 60만채가 새로 공급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수도권 30만 가구 공급 계획’의 2배에 이르는 물량이다. 정부의 집값 안정 대책이 다주택자의 주택 처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주택 공급을 늘려도 집 부자들이 쓸어가면 중산·서민층의 주거 안정은 불가능하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16일 수도권에 2채 이상 집을 가진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공직자에게 불가피한 사유가 없으면 1채만 남기고 처분할 것을 권고한 데 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8일 “청와대의 원칙을 강요할 순 없지만 정부 고위 공직자로 확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19일 “우리 당 총선 출마 후보자는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거주 목적 외의 주택을 처분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집값 안정을 위해 고위 공직자들이 솔선수범하자는 취지다. 고위 공직자들이 먼저 나서면 정부 정책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1주택이 상식’인 사회로 가는 출발점이 되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고위 공직자의 다주택 처분이 수도권 주택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수도권 집은 놔두고 지방의 집을 판다면 집값 안정 효과는 없고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만 키울 수 있다. 또 획일적으로 강요해서도 안 된다. 노부모 봉양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예외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이런 분위기를 확산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와 함께 다주택 매각을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보완했으면 한다. 정부는 ‘12·16 대책’에서 다주택자가 내년 6월 말까지 서울과 경기도 과천 등 조정대상지역의 ‘10년 이상 보유 주택’을 팔면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10년 이상 보유 주택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6개월 시한도 집을 팔기에 촉박할 수 있다.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기준 완화를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양도소득세 감면이 조세 정의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집값 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잠깐이나마 원칙을 일정 부분 유예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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