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담 안되는 범위 지출
소극적인 미국 모델 염두에
“사회통합 어려워” 비판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이달 말 내놓을 예정인 선진복지국가 구상이 애초 참여정부의 복지 강화 기조에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 내 기류가 복지지출의 급증을 우려하고, 최소 7년 안에는 세금을 늘리지 않는 선에서 복지지출 수준을 결정하겠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권 부총리는 최근 몇차례의 공개석상에서 복지구상의 기본적인 얼개를 밝혔다. 복지지출의 수준은 15년 정도의 시계를 가지고 현재 미국·일본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도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또 연금과 의료부문은 구조개혁을 하고, 여기서 절약되는 재원을 보육·여성·노인·장애인 지원 등 전통적 복지 부문에 집중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다음 정권까지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을 할 필요는 없다고도 말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미리 복지모델을 정해놓고 재정을 얼마 투입한다는 식이 아니라 재정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복지지출 수준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증세 얘기는 더 이상 꺼내기 힘든 상태인 만큼 예산절감이나 복지 구조개혁, 비과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극적인 복지 방안을 내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우선 복지지출 규모를 15년 안에 미·일 수준으로 맞춘다는 목표는 새로운 복지제도를 추가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 복지지출 규모(2001년 기준)는 국내총생산 대비 8.7% 수준으로 미국(15.2%)·일본(17.5%)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국민연금이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현 제도만으로도 2020년이면 복지지출 규모가 17.9%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병현 부산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정부의 복지지출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복지 후진국’”이라며 “비전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평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복지 구조개혁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면서도 다음 정권까지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복지지출이 적은 미국식 복지모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 정부가 조세저항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는 것 같다”며 “미국식은 복지혜택이 전국민이 아니라 하위 10%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에 세금을 적게 내더라고 조세저항이 오히려 더 큰 모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는 사회통합적 복지국가가 되기 어렵다”며 “복지모델은 100년을 내다보고 치밀하게 설계를 해야하며 참여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단기 성과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복지 전문가는 “정부의 최근 기류는 복지지출을 이대로 늘리면 초고령화 현상과 맞물리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지출을 통제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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