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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07:05 수정 : 2005.07.21 07:06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표현하면 `협력'이라는 두 글자가 딱 어울립니다. 서로 발전하고 공동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2001년 9월 부임한 뒤 4년간의 한국생활을 마치고 다음 달 19일 이임하는 리 빈( .50) 주한 중국대사는 21일 그 간의 소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을 한 탓인지 한국인 만큼이나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한국인들이 한중관계에 관심이 많은 것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인의 정열, 특히 저에 대한 많은 사랑과 지원으로 편하게 일했고, 많은 결실을 보았다"며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힘있는 지원과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부임했던 2001년 한중 무역규모는 367억달러였지만 작년 900억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당초 목표보다 3년을 앞당긴 올해 1천억달러를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양국 경제관계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현재 양국의 왕래 인원만도 하루 1만명선이고, 2001년 수천명이던 한어수평고시(HSK) 응시자수도 작년에는 2만1천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중국내 한국 유학생은 4만3천명, 한국내 중국 유학생은 1만명이다. 중국은 아주지역에서 처음으로 중국문화원을 한국에 개설하기도 했다.

리 대사는 이 같은 양국 관계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통계치를 일일이 거론하며 "이런 숫자를 보면 지난 4∼5년간 한중관계가 얼마나 발전했는 지 알 수 있다"며 "양국의 장래를 위한 튼튼한 기초가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역사전쟁'으로 불렸던 작년의 고구려사 논쟁을 곤혹스러웠던 기억으로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양국간의 협력이 있었기에 무난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2001년의 무역마찰, 이듬해 탈북자 문제에 이어 역사문제로 어려운 고비가 있었지만 양국이 지혜를 모아 양국관계에 악영향을 주지 않아 너무 다행이었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양국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는 또 "명동에 있는 30∼40년 된 대사관 개보수 문제와 곧 광주에 개설할 영사기구 문제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이임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후임으로 내정된 닝푸쿠이 북핵전담 대사에 대해서도 김일성대학에서 같이 수학했던 동기동창이라며 "잘 봐달라"고 했다.

리 대사는 "닝 대사가 주한대사로 부임하면 양국관계를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이라며 "저에게 한 것처럼 그에게도 한국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주한 외교가에서 애주가로서 이름을 날렸고, 특히 폭탄주를 좋아하는 그는 "닝 대사는 폭탄주를 몇 잔 못한다. 강요하지는 말아달라"며 애교스런 농담도 던졌다.

`만만디'로 통칭되는 중국인들의 `천천히' 습성이 한국 생활동안 많이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하자 그는 "어떨 때는 한국사람보다 더 급하다"며 "골프칠 때 공을 치기 전에 한 두어번 휘둘러보는데 그냥 치게 되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휴일조차도 꽉 찬 스케줄 때문에 영화 한 편 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그는 우연찮게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본 뒤 너무나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어느 일요일에 비가 와서 야외 약속이 취소돼 두 영화 CD를 사서 봤는데 보고 난 뒤 하느님께 감사했다"며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그는 "중국에서의 한류붐은 대단하다"며 "40여개 채널이 있는 베이징에서 황금시간대의 절반이상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가수가 오면 젊은이들은 공항에서 부터 난리에다가 공연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길게 서는 등 `미친' 정도"라며 "반면 노인들은 한국 드라마 속의 노인 의상을 보고 `왜 우리들은 저런 예쁜 옷을 못만드느냐. 모방을 해서라도 만들어달라'며 의류공장에 까지 전화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의 성격은 활달하고 상대방과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때로는 얼굴에 장난끼가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스스로도 "나는 원숭이띠인데 중국에서는 원숭이 하면 손오공이다. 그래서 인지 나도 장난이 심하고 복숭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역사인식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그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과거 침략사를 인정안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한 뒤 "우리는 이웃이기 때문에 함께 가야 하는데 역사문제로 지장을 받으면 안된다"며 "일본이 역사 가해자로서 인식하고 독일처럼 반성하면 얼마든지 인정받고 이해를 얻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얼마전 가열됐던 주한 중국대사의 `격' 논란에 대해 그는 "직급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나라 시정을 얼마나 잘 알고 관계를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도 젊다며 언론에서 그런 우려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한중관계는 엄청 발전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중국의 대사직급과 관련, 차관급인 1깅사는 국가규정에 따라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유엔, 제네바 등 8개 지역에 한정되어 있으며, 국장급인 2깅사는 한국을 포함해 60여개국이며 대부분은 심의관급인 3깅사라고 설명하고 북한의 경우는 중국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차관급이 나가 있다고 부연했다.

외교부 아주사 수석부사장(수석부국장)이자 북핵전담대사로 자리를 옮기는 그는 "책임이 가중됐다"며 "6자회담이 잘되면 한국에서 처럼 바빠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말로 훗날을 기약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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