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10 19:51
수정 : 2013.11.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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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강제철거 통보가 내려진 서울 강서구 방화동 ‘카페 그’에 “쫓겨날 수는 없습니다”라고 적은 펼침막이 내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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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계약 8달만에 퇴거 통보 받고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운동 벌여
국회가 법 바꿨지만 소급적용 안돼
10일 낮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화네거리 이면도로에 들어서자, “쫓겨날 수 없다”, “영업 시작 8개월 만에 재건축이 웬말이냐”라는 펼침막이 내걸린 작은 카페가 나왔다. ‘카페 그’ 안에선 아주머니 10여명과 아이들이 왁자지껄했다. 카페 공동사장 이선민(37), 최지원(35)씨의 얼굴엔 며칠 동안 긴장했던 빛이 역력했다. 도와주는 이들과 함께 가게에서 스티로폼과 침낭을 깔고 밤을 지새운 지 벌써 엿새째다.
카페는 강제 퇴거 위기에 놓였다. 건물 주인이 ‘건물을 재건축한다’며 세입자인 이들에게 나가라고 통보했고 건물 점유를 이전하라는 명도소송을 냈는데, 2심까지 승소한 것이다. 지난 4일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이씨 등은 ‘이대로 퇴거하는 건 억울하다’고 했다. 가게를 비우라는 통보를 받은 시점이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맺은 지 8개월밖에 안 된 때였다는 것이다. 2010년 8월, 2년 임대차 계약을 할 때 건물주는 “내쫓지 않을 테니 장사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듬해 5월 중순 “두 달 안에 나가달라”고 했다. 건물 옆 집에서 살던 주인은 “장마로 집이 무너지게 생겨 다시 지어야 한다. 상가까지 헐고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려 한다”고 했다.
이씨는 “내부 시설비 등 6000만원이나 들여 가게를 꾸몄고 상가는 통상 임대 기간을 4~5년 보장하는데, 장사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나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 인근에서 비슷한 가게를 꾸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건물주는 보상금으로 1500만원까지 제시했고, 이를 거부하자 다른 사람을 통해 ‘제시한 보상금이 싫으면 법대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퇴거 통보 5개월 뒤인 2011년 10월20일 재건축이 승인됐고, 지난달까지 명도소송이 이어졌다. 2심까지 재판하면서 이씨 등은 ‘8개월 만에 나가야 했다면 아예 계약을 안 했을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재판부는 건물주 손을 들었다. 당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건물을 재건축하는 경우엔 임차인을 아무 때나 내보낼 수 있게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이런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내고,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법 개정 운동을 벌였다. 이들이 동네에서 연 작은 콘서트나 시낭송 등에 공감한 단골들도 함께했다.
결국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법이 개정됐다. 계약 때 서면으로 고지하지 않으면, 재건축을 사유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도록 바뀐 것이다. 하지만 ‘카페 그’의 임대차 계약은 법 개정 이전에 이뤄진 것이어서, 개정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단골손님이라는 이순옥(37)씨는 “법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양심과 도덕 아닌가. 건물 주인이든 누구든 남의 삶을 훼손해선 안 된다. 강제 퇴거에 함께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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