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용강2구역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 보존가치가 높아 이전 복원한 전통한옥 앞에 용강2구역 주택재개발조합 관계자들이 모여 공사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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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쏙] 재개발·재건축조합 투명운영 확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개발·재건축 조합이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조합장이 되면 구속 아니면 자살’이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이와 달리 투명하게 조합을 운영해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용강동 285번지. 한쪽에선 563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용강2주택재개발구역 조합 관계자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날 아파트 단지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한옥을 찾았다. 이 한옥은 한때 재개발 사업의 큰 애물단지였으나, 조합-전문가-자치구의 ‘협업’으로 모두가 이익을 얻는 복덩어리가 됐다. 원래 이 재개발구역 안에는 한옥이 20여채 있었다. 보존가치가 낮아 밀어버리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화재청의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뜻밖의 상황이 불거졌다. 한옥 가운데 조선 명성황후의 오빠이자 호조참판을 지낸 민승호의 사가 등 한옥 3채를 이전 복원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전 부지와 비용이었다. 조합은 한옥을 옮겨 지을 빈땅을 찾을 수 없었다. ■ 고도제한 일부 완화로 한옥 이전 비용 마련 문화재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옆 용강1구역 내 문화재인 정구중 가옥(서울민속자료 17호) 옆으로 한옥을 옮겨 ‘한옥 집적지’를 만드는 방안이었다. 비용 35억원은 마포구가 고도제한을 일부 풀어 아파트를 더 지을 수 있게 허용해주면서 해결했다. 조합이 자기 땅에 문화재도 아닌 한옥을 복원해 공원을 만들었으니 공공부문이 보상을 해준 것이다. 조합은 30~40가구를 더 지을 수 있었고, 용강2구역은 2004년 6월 기본계획 고시 뒤 10년 만인 오는 7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용강2구역 조합의 박상수 사무장은 “한옥 이전 문제를 겪으면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법을 잘 알아야 한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재개발조합 문제는 서울시의 골칫덩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사업이 시작된 이래 조합 추진위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덩달아 조합 비리도 만연했다. 부정부패가 없더라도, 재개발·정비 사업의 복잡함 때문에 몇 년째 ‘개점휴업’으로 돈만 까먹고 있는 추진 주체(재개발조합이나 조합 추진위원회)도 여럿이다. 서울에서 추진 주체가 있는 전체 406개 구역 중엔 2년 이상 사업이 지연된 채 운영비만 축내는 곳이 180곳이다. 이 가운데 5년 이상 사업이 정체된 곳만 32곳에 이른다. 사업이 지연된 180곳에서 이들이 쓴 비용은 한 곳당 평균 26억3000만원에 이른다고 서울시는 전했다. 또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조합의 내부 운영 실태를 점검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총회 승인도 없이 100억원 넘는 돈을 빌리거나 법인 통장이 아닌 개인통장으로 자금을 관리하고, 용역비를 부풀려 계약하거나 상근직원 2명의 식비로 한 달에 380만원을 쓴 곳도 있었다.2년이상 지연 180곳·운영비 26억
현석 2구역 6년간 분열돼 싸우다
구청 중재로 통합뒤 진행 원활
면목 2구역, 잦은 회의로 모든 결정
행당 5구역선 자료 낱낱이 공개
“민간서 모두 떠맡기엔 한계
공공기관이 구실 분담해야” 그러나 조합(추진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 경우도 많다. 마포구 현석2주택재개발구역은 자칫 10년 넘게 다람쥐 쳇바퀴만 돌듯 사업 진척이 없었을 가능성이 컸다. 2002년 주민들이 추진위를 꾸렸는데, 문제는 추진위 2개가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다. 6년을 서로 싸우느라 시간만 보냈다. 그러다 마포구가 주선해 분쟁 당사자들과 구 직원, 주민자치위원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어 한곳으로 통합했다. 주민 총회에선 활동을 접은 쪽 추진위가 쓴 비용 3500만원을 조합이 떠안기로 결정했다. 이후 사업이 속도를 냈다. 2009년 11월 정비구역으로 지정고시된 뒤 이듬해 2월에 조합설립 인가를 받았다. 지난해 5월에 착공해 2016년 2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현석2구역조합의 지성진 총무이사는 “정비사업에 (구청이) 잘못 개입하면 오해를 받기 십상인데도 마포구청에서 적극적 역할을 해준 덕이 컸다”고 말했다. ■ 컨테이너에 조합 사무실 차려 믿음 얻어 조합은 조합원들과 신뢰를 쌓기 위한 의사소통에 주력했다. 소식지,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적극 활용해 추진 상황을 일일이 알렸다. 덕분인지 별다른 반대나 이견 없이 사업은 순풍을 탔다. 이주도 1년 만에 끝났다. 강제 이주자도 없었다. 지 이사는 “조합은 우선 신뢰를 쌓아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주민들은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본다. 우리 조합원들은 오히려 볼 때마다 고생한다고 격려한다”고 말했다. 사업에 성공한 조합들은 모두 신뢰를 최대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중랑구 면목동 1447번지 일대에 256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는 면목2주택재건축구역의 조일환 조합장은 40대의 ‘젊은피’다. 다른 조합장들은 대개 60~70대다. 조 조합장은 따로 사무장을 두지 않고 모든 일을 직접 한다. 지역 신문사를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소식지를 만들고 본보기집에서 일반 분양자들을 대상으로 홍보도 한다. 조 조합장은 “조합원들은 조합 업무에 대해 일단 의심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이 중요하다. 왜 그 금액으로 결정됐는지 조합원들에게 답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 조합장은 시공사와의 공사비 협상 등 주요 계약 과정에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협상단을 꾸려 참여시켰다. 2012년 한 해 동안 이사회만 21번, 대의원회 18번, 정기총회와 임시총회를 3번 열었다. 매주 크고 작은 회의가 한두 차례씩 있었다. “주민들 중에 회의비를 왜 그리 많이 쓰냐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용을 많이 쓰더라도 회의를 자주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결국 사업비 절감이 가능했습니다.” 조합원의 신뢰를 얻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반포주공1단지 1·2·4지구를 재건축하는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비용절감 노력을 가시적으로 보이려 조합 사무실을 컨테이너에 차렸다. 성동구 행당5재개발구역은 2009년 서울시가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의 추진과정과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구축한 ‘클린업 시스템’ 도입 당시 시범 사업에 참여해 조합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걸 증명해 보였다. 지금은 조합원이면 누구나 자기 구역의 사업계획이나 분담금을 알 수 있게 돼 있지만, 당시는 조합들이 자료 공개를 꺼리는 게 관행이었다. 또 송파구 풍납우성아파트재건축구역 조합은 추진위 단계에서부터 주민들에게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설문을 여러 번 벌였다. 평형과 설계 전반에 관한 개략적인 계획을 5차례 물었고, 다시 발코니 확장, 부분 임대주택 같은 계획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었다. 국민주택 규모 85㎡ 이하의 평형을 전체의 96%로 계획한 것도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다. 부대시설은 보육시설과 독서실 위주로 짰다. 주민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 조합설립 동의율은 100%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최근 이런 조합들의 성공적인 운영 사례를 모아 <주민에게 듣다>라는 책을 펴냈다. ■ 재개발·재건축에 공공기관 적극적 구실 필요 한편 조합의 자발적인 노력 외에 발상을 전환해 재개발·재건축의 공공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정부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민간의 일이라며 모든 과정을 주민들에게 맡겨놓고 있다. 면목2구역 조일환 조합장은 “정비사업의 전체 과정은 매우 행정적이고 법적인 일이다. 조합원들 중 이 전체 흐름을 총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이런 일을 주민들의 역량만으로 해야 하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는 조합이 세금으로 지어야 하는 도로와 학교용지 등 각종 기반시설 설치도 맡고 있다. 장남종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발이익이 나지 않는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만큼 공공과 민간이 구실을 분담하는 방향으로 새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도입한 ‘공공관리제도’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주 서경대 교수(도시공학)는 “행정기관 등이 지금은 조합 임원 선거를 관리하고 업체와의 계약을 대행하는 정도의 일만 하고 있다. 앞으로는 조합 임원들의 신상과 전과 유무 등 더 많은 정보를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공공이 해당 구역에 포함된 국공유지만큼의 지분을 갖고 직접 조합원으로 참여해 감사를 맡는 등 적극적 구실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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