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장기도피땐 국제사법공조’ 발언 배경
국제 사법공조로 현직 주미대사와 삼성 회장을 ‘강제송환’한다? 21일 오전 천정배 법무장관이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외국 당국과 사법공조하는 방법들이 있으니 (검찰이) 최선을 다해 그런 방법을 활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은, 그동안 천 장관이 삼성 최상층을 향한 수사에 강한 의지를 밝혀온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이었다. 인터폴이나 범죄인인도조약 등 국제 사법공조를 통한 ‘범인 강제 송환’은 대개 파렴치범이나 살인 등 강력범죄 혐의자에게 적용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천정배 법무장관이 22일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대사를 두고 국제사법공조 가능성을 시사한 배경은 무엇일까? 천 장관은 건강검진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이 회장과 홍석현 주미대사가 도피성 해외체류가 장기화된다면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원칙적인 발언을 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하지만 재벌 비리의혹과 관련된 검찰 수사의 전례에 비춰 총수 일가에 대해 법무장관이 구체적인 조사 방법을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회장이 수사에 협조할 것으로 믿는다”는 천 장관의 발언은 대선자금 제공, 기아차 인수로비 의혹 규명을 위해 이 회장 등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이미 검찰 내부에서 내려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천 장관이 이날 “검찰 수사 앞에 특권이나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은 삼성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검찰이란 비난 여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천 장관은 이 회장이 해외에 장기체류한다면 자칫 검찰의 강력한 수사의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사법공조 발언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형사사법공조조약은 범죄 수사ㆍ기소ㆍ재판에 필요한 증언ㆍ증거물의 제공, 압수ㆍ수색 요청과 집행, 형사재판 서류 송달 등 수사에서 재판까지 필요한 모든 절차를 조약체결 당사국들이 협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나 홍석현 주미대사는 참여연대에 의해 고발된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인 만큼 장기간 도피 목적으로 미국에 체류할 경우 이 조약에 따라 원칙적으로 사법공조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이 미국에 사법공조까지 요청해가며 이 회장이나 홍 대사를 조사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는 희박해 보인다.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총수이자 방문국마다 국빈 대접을 받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인 이 회장이 국제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 조사를 피하려고 장기간 미국에 머물 가능성도 낮고, 실제로 이 회장이 장기 해외체류를 하더라도 검찰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 또한 적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 회장의 해외 체류와 관련해 “나중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직 수사에 지장을 느낄 만한 단계는 아니다”며 서두를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법조인 출신의 천 장관이 누구보다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을텐데 해외 도피한 강력범에게나 쓰일 법한 사법공조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삼성쪽에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즉 삼성이 불필요한 여론의 오해를 살 일을 하지 말라는 일종의 ‘압박 신호’라는 해석이다. 천 장관의 발언이 목적한 또 하나는 검찰에 대한 ‘지침’으로 볼 수 있다. 삼성 불법자금 의혹 수사를 할 검찰이 피고발인 소환 등의 문제로 재벌기업과 불필요한 실랑이를 벌이는 부담을 덜어주려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대사를 겨냥해 “장기 해외도피땐 사법공조라는 방법을 검찰이 활용할 것으로 본다”고천 법무장관이 언급한 것은 하나의 원칙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발언의 의미와 파장을 알고 있을 천 장관의 언급은 삼성과 검찰을 향한 ‘강력한 수사의지’ 표명으로 해석되고 이에 따라 검찰의 삼성 수사를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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