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14 17:50
수정 : 2005.10.14 22:29
검찰 ‘독립성’ 무게보단 외압 판단 여부가 관건
김종빈 총장은 14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지휘권 발동은 검찰권 침해”라는 비판을 곁들였다. 그러나 이 논리가 과연 맞는지에 대해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검찰청법 8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조항은 1949년 12월20일 검찰청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고, 당시 14조였던 이 조항이 1986년 검찰청법 전문 개정 때 8조로 자리를 바꾼 것말고는 단 한차례의 수정도 없이 지금껏 유지됐다.
애당초 입법자들이 이 조항을 넣은 이유는 분명하다. 검찰도 행정부의 일원이기 때문에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에 의해 지휘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 사건에 대해 총장만을 지휘하도록 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있긴 하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같은 법 12조에 총장이 검사들을 지휘·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성 보장에 무게를 둔 조항은 아니다”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오히려 여소야대였던 1988년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신설된 ‘총장의 2년 임기 규정’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유일한 장치로 보고 있다.
결국 우리 법규정이 정치적 중립의 책임을 전적으로 검찰총장 개인의 소신에 맡기고 있는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정치적 외압 논란이 일고 있지만, 결국 사태의 핵심은 장관이 법적으로 보장된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임기가 보장된 총장이 외압으로 판단하느냐 아니냐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도 장관이 총장에게 구두로 지시한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지휘권 행사 자체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흥분하면 조직 이기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이 많았다.
과거 법무장관의 구두지시를 받고 검찰이 지시의 부당함을 따져 불복했던 사례는 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이인 법무장관이 최대교 서울지검장에게 이아무개 장관을 불기소하라고 구두로 지휘했으나, 당시 검찰은 “기소·불기소는 검찰의 고유 권한”이라며 거부했다. 특수수사 경험이 많은 한 중견 검사는 “과거엔 총장이 아닌 특수부장이나 차장급 검사들이 직접 법무부에서 은밀히 장관을 만나 지시를 받거나 조율을 한 경우도 많았다”며 “검찰이 행정조직의 일부인 만큼, 차라리 공개적으로 수사지휘를 하고 지휘의 정당성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하는 게 검찰 독립에도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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