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전방은요?” 아버지를 잃은 딸은 북의 동태를 먼저 걱정했다 한다. 사사로운 감정을 압도하는 애국심은, 마음을 더욱 슬퍼지게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애국심’의 화신으로 통한다. 2014년을 마무리하는 날, 박 대통령은 한 영화의 국기하강식 장면을 들어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자’라며 애국심을 강조했다. 특히 공직자가 신봉해야 할 핵심 가치라고 힘줘 말했다. 애국심이라는 제1의 공직가치 정립은 이렇게 시작됐다. 인사혁신처가 나섰다. 영화 <국제시장> 개봉 8개월 전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관피아’ 척결을 목표로 ‘인사혁신’에 나서겠다는 새 조직의 첫 화두는 ‘공직가치’였다. 지난해 4월 공무원시험에 공직가치 심층면접을 추가하고 설문조사 등 공직가치 정립 작업에도 나섰다. 예비공무원들은 새마을운동·경부고속도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종북세력’ 등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했다. 시험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도 그렸다. 공무원이 갖춰야 할 국가관 설문에서 시민들은 애국심을 사명감에 이어 2순위로 꼽았다. 공무원들은 애국심을 사명감과 자긍심에 이어 3순위로 꼽았다. 이런 애국심과 함께 민주성 등 9가지가 공직가치로 규정됐다. 9개 가치를 나열한 개정안은 입법예고·법제심사 등 절차를 모두 거쳤지만 황교안 국무총리의 지시로 민주성 등이 지워져 나갔다. 인사혁신처는 <한겨레> 보도 뒤 자신들이 만든 법안을 스스로 부인했다. 법제처조차 9개 나열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9개를 예시할 경우 9개가 공직가치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될 수 있어서” 3개로 규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이제 애국심 등 3개가 공직가치의 전부로 인식될 판이다. 인사혁신처는 왜 3개로 규정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리지 않았을까? 이탓에 무더기 오보가 났다. 대다수 언론은 애국심·민주성… 등 9개 공직가치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에 명시됐다고들 26일 보도했다. 오보는 바로잡히지 않았다. 공직자한테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을 따르는 ‘애국심’보다 정책을 투명하게 알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모두의 이익이다. 투명성과 공익성은 황 총리 지시 이후 지워졌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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