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2.05 01:14
수정 : 2016.02.05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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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월 18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역 광장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서명운동본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이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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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이어 정부기관 나서
보훈단체 14곳에 협조 요청
‘참여실적 파악’ 압박에
현수막 걸라며 문안 제시도
중앙정부부처가 정부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 등에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 동참을 독려하는 문서를 내려보낸 것으로 4일 밝혀졌다. 경북지역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관권 서명’에 나선 사례는 있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개입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과거 독재시대에나 있었던 관제 서명운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최근 재향군인회 등 보훈단체 14곳에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서명운동’에 참여해달라는 업무협조 공문을 보냈다. <한겨레>가 입수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서명운동 협조’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관내 보훈단체의 참여실적을 지방보훈관서에서 2월3일(수) 12:00까지 파악하여 참고하고자 하오니 소속 지부장 또는 지회장 주관으로 서명운동에 참여하도록 전파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돼 있다. 명목은 ‘협조’지만 ‘참여 실적’까지 파악한 걸 보면 사실상 강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민생구하기 서명운동은 지난달 18일 박근혜 대통령의 참여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 등 정부 각료들이 잇따라 참여하면서 관권 서명운동 논란에 휩싸였다. 또 경제단체가 산하 단체에 참여 독려 공문을 보냈고 최근 경북지역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서명을 받으러 다닌 것으로 밝혀져 자발성에 기초한 서명운동의 취지에서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중앙정부부처인 보훈처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관제 서명운동’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연일 야당을 압박하며 서명을 촉구한 데 이어 중앙부처가 관권을 동원해 대중적 서명을 독려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총선 관권 개입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와의 대화는 거부하고 관제 서명운동에 나서는 것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권위주의이며 독재”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이광철 변호사는 “관제 서명운동 방식의 국회 압박은 헌법상 가치인 권력분립의 정신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이 문건에서 서명 방법으로 “보훈단체장 및 회원이 단체로 서명”을 제시하고 있다. 또 현수막을 제작해 “서명하는 창구에 게시, 서명 후에는 보훈회관 및 왕래가 많은 장소에 게시”하라고 적시했다. 현수막 문안도 3가지를 예시해 참조하도록 했다. 1안은 “정당은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국가유공자와 UN참전용사가 지킨 대한민국입니다”이며, 2안은 “정당은 정부와 경제계가 일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국가유공자와 UN참전용사가 지킨 대한민국입니다”, 3안은 “경제는 곧 안보입니다!” 등이다.
실제 보훈처에 등록된 보훈단체들은 최근 서명운동에 잇따라 참여했다. 상이군경회가 지난달 21일 서명에 참여했고, 고엽제전우회는 25일부터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재향군인회도 1일 보도자료를 내어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보훈단체장 신년하례 때 단체장들이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하자’고 의견을 모은 뒤 보훈처에 참여요령 등을 참조할 수 있는 문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해 담당 과에서 만들어 1일 보낸 것”이라며 “정식 공문이 아니라 협조요청 문서이며 참여실적을 파악한 것도 없다”고 해명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노형석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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