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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3 15:56 수정 : 2017.11.23 20:17

권익위, 현행 3·5·10 기준을 상향하는 안 검토
이낙연 총리 등 “농축수산업에 피해 있다”며 개정 압박
권익위 안에서 ‘울며 겨자먹기 식’ 개정에 불만
청탁금지법 후퇴 반대하는 국민청원 진행 중
인식 조사 결과 대다수 시민, “3·5·10 적당해”
11월29일께 대국민보고대회서 경제 영향 등 나올 예정

농축산물 수급동향 청취하는 이낙연 총리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두번째)가 휴일인 19일 오전 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을 방문해 수확기 농축산물 수급동향과 대책을 보고받고 있다. 2017.11.19 연합뉴스
최근 정부는 ‘김영란법’이라고 알려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을 고치기 위해 내부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 법 개정 실무를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박은정·이하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의 핵심으로 널리 알려진 식사·선물(3·5만원) 비용을 각각 5만원,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법 개정 방향과는 달리 대다수의 시민과 공직자는 현행 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현재 3·5·10만원으로 규정된 음식물·선물·경조사비 가액이 적당하다고 여긴다. 정부가 민심과 다른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권익위가 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향에 어떤 모순점이 있는지 짚어본다.

■ 일반 시민 대다수, “식사비 제한 3만원 적당하다” <한겨레>가 23일 국회 여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권익위의 ‘가액범위 조정 추진 경과 및 향후 일정’ 보고서에는 정부가 제시하는 청탁금지법 가액범위 조정안이 나와 있다. 권익위는 이 보고서에서 식사(음식물)비를 현행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상향하는 것을 검토”한다면서도 “일반 국민은 현행 3만원으로 유지하는 의견이 다수”라고 적시했다. 권익위는 지난 8월2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청탁금지법 취지는 강화하되, 법 시행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와 국민 의견을 바탕으로 보완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 후속조치로 이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또 부정적인 면도 많이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다 보고해서 국민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9월 한국행정연구원이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공개한 가액기준 변경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현행 가액 기준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가장 많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올 8∼9월 일반 국민 1000명, 공직자(공무원 500명,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300명) 800명, 언론인 204명, 교원 406명, 음식점·농수축산화훼업 등 영향업종 종사자 600명을 조사한 결과 현행 식사금액 한도 3만원이 적정하거나 오히려 더 엄격하게 낮춰야 한다고 답한 의견이 과반을 크게 웃돌았다. 설문에 응한 일반 국민(65%), 공무원(79.8%),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79.7%), 교원(69%)이 청탁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식사비 3만원이 적당하거나 오히려 하향해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언론인(59.8%)과 영향업종종사자(51%) 가운데서는 가까스로 절반을 넘는 인원만이 가액기준을 현행 3만원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체 응답자 3010명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1929명(64%)이 식사비 가액기준이 타당하다거나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가액기준을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리려는 권익위가 절대다수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조사에서 국민 89.2%, 공무원 95% 등 절대다수가 법 시행을 찬성했고, ‘이 법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일반 국민 87.3%, 공무원 93.4%), ‘부패문제 개선에 도움이 된다’(일반 국민 78.9%, 공무원 91.8%)고 답했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다양한 인식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식사·선물·경조사 비용 상한을 3·5·10만원으로 하는 현행 청탁금지법 시행에 긍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올해 5∼10월 실시된 8개 인식 조사에서도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 결과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10월 서울시가 공무원 및 시민 39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공무원 99%, 시민 89.9%), ‘법 시행이 부정청탁 관행 및 부패 근절에 기여했다’(공무원 85.4%, 시민 84.8%)는 의견이 많았다. 같은 달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 및 소상공인 600개사를 조사한 결과 ‘법 시행으로 사회 전반에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는 기업 비율이 83.9%였고, ‘법 시행 후 기업 하기 좋아졌다’는 응답 비율도 74.4%나 됐다. 서울시교육청이 9월 소속 교직원 및 학부모 5만50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법 시행이 교육현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비율은 학부모가 95%, 교직원이 92%나 됐다. 학부모와 교직원 모두 ‘법 시행 뒤 부정청탁과 촌지 등 금품 수수 관행이 근절됐다’고 답했다.

■ 농축수산물만 예외적으로 10만원? “애매한 기준” 권익위가 작성한 이 보고서에서 또 눈에 띄는 대목 가운데 하나는 ‘선물’ 가액범위를 “현행 5만원에서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예외 적용”하는 것이다. 권익위는 보고서에서 “관계부처는 농축수산물의 50% 이상을 재료로 한 가공품까지 포함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행정연구원이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선물 가액범위에서 농축수산물만 예외로 하는 것에 대해 일반국민 52.3%, 공무원 55.4%,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70%, 교원 63.1%가 반대했다. 언론인(55.4%)과 영향업종 종사자(68.2%)만이 농축수산물에 예외를 두는 안에 찬성하고 있다.

문제는 농축수산물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다. 권익위 관계자 ㄱ씨는 “예컨대 고추는 1차 농축수산물에 해당하지만, 고추장은 가공품이다. 단순히 말린 김은 1차 농축수산물이지만 김에 참기름만 바르면 바로 가공품이 된다. 사과에 방부처리를 하면 1차 농축수산물이 아니라 가공품이 된다. (가액범위를 현행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조정한다는데 이에 해당하는) 농축수산물이 뭔지 처리하는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6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도 ‘굴비나 김치, 양념 한우 같은 것은 가공품인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 권익위 내부도 불만, 총리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 식’ 개정 추진 청탁금지법 개정을 둘러싸고 권익위 내부를 비롯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가액기준 변경에 대한 불만과 답답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익위 관계자 ㄴ씨는 “공무원 92%가 청탁금지법으로 반부패 효과가 있다고 답변한다”며 “국장 등 고위공직자들도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편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회의원, 각종 농민 단체가 (청탁금지법을 개정하라며) 엄청나게 어필을 한다. 피해를 받는 사람들은 특정돼 있고, 혜택을 받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넓게 퍼져 있어서 자칫 국민들이 청탁금지법 개정을 원하는 것처럼 착시효과가 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안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현재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청탁금지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입법 예고가 나간 뒤 여론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무원 ㄹ씨도 “가액기준 변경보다는 피해가 있는 업종을 맞춤형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효율적인 대응이 아니겠냐”며 “일시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해서 가액기준을 바꾸려 하는 것은 잘못된 답이다”라고 지적했다.

애초 청탁금지법을 설계한 권익위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청탁금지법을 개정하려고 하는 데에는 농축수산물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반발 뿐 아니라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취임 이후 지속해서 법 개정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표출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부 국회의원들도 당·정·청 협의회 등에서 개정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관 부처인 권익위가 시민들의 바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마트를 방문해 “정부는 농축수산물 예외 적용에 관한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을 논의 중에 있고, 늦어도 설 대목에는 농축수산인들이 실감할 수 있도로 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9월18일에도 이 총리는 청탁금지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추석맞이 직거래 장터 개장식에 참석해 “올여름은 농어업인들께 참으로 혹독한 계절이었다. 청탁금지법은 투명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농어민 여러분께 많은 타격을 드렸다. 청탁금지법으로 위축된 농축수산물의 판매가 올해 추석부터라도 회복되도록 하자는 요구가 정부 안에서도 있었다. (중략) 가능만 하다면 올 추석과 같은 어려움을 내년 설에는 농어업인 여러분께 드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후보자 시절이던 5월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청탁금지법의 현실적 검토와 수정 가능성’을 묻는 의원의 질문에 수정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취지로 “청탁금지법을 도입하면서 기대한 맑고 깨끗한 사회라는 가치는 포기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피해를 보는 분야가 생겨선 안 되기 때문에 양자를 취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지 검토해보고 싶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당시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도 채 안 됐던 시점이다. 11월29일께 권익위가 대국민보고회를 통해 청탁금지법이 경제에 미친 영향 등을 발표하면 실제 일부 업종의 피해 정도가 대다수의 시민이 긍정하는 청탁금지법의 반부패 영향과 비교할 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비교해 볼 수 있게 된다.

■ “이번에 후퇴하면 또 후퇴, 있으나 마나 한 법 될 것” 권익위가 11월 말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구체적으로 밝힐 예정인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과’ 조사 결과에는 청탁금지법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줬는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취재 결과 자료에는 업종에 따라 ‘일시적인’ 피해가 확인됐고, 한 개 업종은 1년 내내 피해가 지속됐다는 내용이 포함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업종은 1∼2개월 정도 피해를 보다가 다시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고, 유독 경제적 피해가 있는 걸로 나타나던 한 개 업종도 현재 회복 추세에 있으며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다시 예년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피해가 1년 이상 지속되는 업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29일 있을 예정인 청탁금지법 관련 대국민 보고대회에서는 오히려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부패가 개선되면 경제성장률이 올라간다는 내용과 청탁금지법 도입 이후 접대비 등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감소해 부패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16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등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한국행정연구원이 진행한 경제 영향 평가 결과를 근거로 들며 “(청탁금지법)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화훼 등 농업 쪽에도 중·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청탁금지법 후퇴 반대 청원 글.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코너에는 청탁금지법에 관한 청원 글이 60여건 올라왔다. 대부분이 가액 기준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이고, 국회의원과 어린이집 등으로 법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가액기준을 지금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청원도 많다. 화훼농가 보호 등을 명분으로 법을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글은 10여건에 그쳤다. 특히 최근 권익위가 가액 기준을 상향하려 한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인 11월19일에 올라온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 상한선 후퇴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에는 23일 현재 700명 이상이 청원에 참여해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청원에서 한 시민은 “(선물비 5만원 규정 때문에) 농수산업계가 어렵다면, 구조적으로 고쳐야 한다. 왜 부패에 기대서 수익을 찾나. 이번 한 번 후퇴하면 또 요구하고 또 후퇴하고 할 것이고 결국에는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될 것이다. 상한선을 내리면 내렸지, 상한선을 올리거나 특정 품목을 제외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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