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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19:10 수정 : 2005.12.29 22:10

최광식 경찰청 차장(가운데)이 29일 오전 경찰청장실을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사표 뒤 “물러날 사안 아니라는 판단 변함 없어”
대책위 “철학없는 경찰총수 뒷모습에 쓴웃음” 비판

여론의 압박에도 ‘사퇴 불가’를 외쳤던 허준영 경찰청장은 29일 물러나면서도 ‘떳떳하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허 청장은 이날 사표를 낸 뒤 발표자료에서 “홍덕표님과 전용철님의 명복을 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이어 잘못이 없는 자신이 폭력 시위 문화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번 농민 사망사건을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라고 규정하고,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 현안을 고려해, 평소 국가경영에 동참하는 치안을 주장했던 저로서는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사퇴 여부에 관한 일부 인터넷 사이트의 무작위 여론조사를 근거로 “여론조사에서 70% 내외의 지지를 보여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한없는 사랑을 보낸다”고도 했다. 또 “새해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국민의 고막을 찢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수사구조개혁 문제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을 맺었다.

이런 ‘사퇴의 변’에 대해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는 “사퇴하면서까지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주장하는데, 기본적인 철학도 없는 경찰 총수의 뒷모습에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허 청장이 하루만에 사퇴한 것은 정치권에서 탄핵 움직임까지 일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년 임기의 절반 정도를 채우고 허 청장이 중도 사퇴함에 따라, 2003년 12월부터 도입된 경찰청장 임기제는 한 번도 지켜지지 않게 됐다. 첫 임기제 청장인 최기문 전 청장은 경찰 인사를 둘러싸고 청와대 쪽과 갈등을 빚는 바람에 임기 두 달여를 남긴 채 사퇴한 바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허 청장 물러나기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시위 농민 사망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지난 27일 오후 2시30분부터 허준영 경찰청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29일 오전 11시20분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정치권 압력 감지한 뒤 유인태·염동연 의원에 전화

‘대통령뜻’ 묻자 “사퇴가 좋겠다”

여야 의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28일부터 29일 오전 사이 허 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목소리는 정점에 달하고 있었다. 28일 저녁 이용희 위원장과 최규식 간사 등의 주도로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모임이 열렸다. 논의의 대세는 “허 청장이 속히 물러나야 한다”는 쪽이었다. 이런 뜻은 간접적으로 허 청장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29일 오전에는 열린우리당 최규성, 한나라당 김영덕, 민주당 한화갑,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등 농촌 출신 여야 의원들이 별도로 만나, “허 청장이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추진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허 청장은 28일 오후부터 매우 깊은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허 청장은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 근무할 당시 정무수석으로 함께 일했던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 등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왔다고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대해 염 의원 등은 “대통령의 뜻은 알아서 거취를 정하라는 것”이라면서도, 사실상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허 청장이 계속 ‘버티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선, “상황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는 분석이 많다. 열린우리당의 핵심 관계자는 “(허 청장이)2∼3일 지나면 여론이 수그러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사망한 농민들이 시위현장이 아니라 병원에서 숨졌고, 홍콩에서의 농민 폭력시위에 대한 비판론이 있어 사퇴 여론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여권 일부에서 허 청장을 감싸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8일 저녁 행자위 의원 모임에서도 일부 의원들은 “그러면 앞으로 누가 시위를 책임있게 진압하겠느냐”며 허 청장 경질에 반대했다고 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직·간접으로 어떤 ‘의사’를 전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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