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후반기를 맞아 단행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 교체도 이 실장이 갖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특출한 판단력 등을 두루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이 실장은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정치적 궤적을 함께 한 이른바 '386'과 '부산파'와 같은 비주류 출신의 청와대내 여느 측근들과는 달리 DJ 집권 후 민주당으로 입문 했던 전문가 출신이다. 전남 장성 태생으로 80년 고려대 신방과를 졸업, KBS와 서울경제신문을 거쳐 한국일보 경제부장을 지냈고 DJ정부 들어 예금보험공사 이사로 재직하다 청와대에 들어가 국정홍보조사비서관과 국내언론2비서관을 역임했다. 노 대통령과는 2002년 대선과정에서 '실력'으로 연을 맺었다. 당시 당 정책위 상임부의장으로서 행정수도 건설공약 등 선거국면에 파괴력을 지닌 굵직한 정책공약 입안을 주도하면서 노 대통령의 눈에 들었던 것. 대선의 물줄기를 바꾼 이 실장의 전략적 감각은 정몽준씨와의 후보 단일화 기여 등 정무적 사안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 실장은 일찌감치 대선국면에 앞서 "차기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며 미래를 직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전략 마인드를 눈여겨봤던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만에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었던 이 실장을 홍보수석으로 승진시켰고, 그는 이후 강력한 추진력과 조정력으로 재신임 정국과 탄핵국면을 돌파해내며 핵심 참모로 자리매긋다. 총선 이후 노 대통령이 정무수석을 폐지한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를 잇는 통로로서 소리나지 않게 정무적 사안을 챙겨온 이 실장은 그러나 정치구조가 뒤바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과도한 업무에 따른 피로누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 2월 대통령 홍보문화특보로 물러났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신뢰도로 미뤄 그의 승진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임기 후반기에 대비해 노 대통령이 이 실장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준 셈이다. 실제 이 실장은 홍보문화특보로 있는 동안 사회각계의 다양한 인사들과 접촉을 통해 생생한 현장 여론을 취합해 노 대통령에게 자문과 조언 형식으로 이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노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목표로 잡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 챙기기"쪽에 집중한다면, 이 실장은 단기 현안들을 꼼꼼하게 챙기는데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실장을 보는 청와대 참모진의 시각도 노 대통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묵한 재사형 참모, 넓은 시야와 탁월한 판단력을 갖춘 전략가, 대화와 타협의 명수라는 데 인물평이 모아진다. 한 수석비서관은 "전략가지만 외유내강형으로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준다"고 평했고, 한 비서관은 "정무.정책 능력을 두루 갖추고 인간미에 조정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이강철(.시민사회), 문재인(.민정), 김완기(.인사), 김영주(.경제) 수석 등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수석들을 원만하게 이끌면서 비서실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도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청와대 |
이병완 비서실장 임명과 청와대 비서실 방향 |
이병완(.51)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5일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금의환향'함으로써 향후 청와대 비서실의 운용 방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참여정부 임기 후반기가 시작되는 이날 단행된 비서실장 인선은 하반기 국정운영기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이 실장은 대학 총장 출신으로 '실무.관리형'으로 평가되던 전임 김우식 비서실장과 달리 정무적 감각을 갖추고 일처리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이어서 청와대 비서실 분위기는 바뀔 것을 보인다.
이 실장이 정무적 관점에서 비서실 업무 전체를 총괄하면서, 정책분야는 김병준 정책실장이 실무적으로 책임지면서 각 소관 분야 수석들이 이를 보완해 운영하는 방향으로 비서실이 굴러갈 것으로 보인다. 이 실장과 김 실장은 1954년생 동갑내기이기도 하다.
이 실장은 개인적으로는 청와대에 비서관으로 들어와 차관급인 수석을 거쳐 총리, 국정원장과 함께 권부의 '빅3' 중 하나인 비서실장으로 승진한 진기록을 갖게 됐다.
김대중(.DJ) 정권을 끝으로 권위주의 시대 정치인이 권력 중심에서 퇴조한 이후 기자 출신이 비서실장에 발탁됐다는 점도 화제다.
언론계 출신 비서실장은 김영삼 정권 때 김용태 전 민자당 의원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앞서 김용태 전 실장은 물론이고 전임 김우식 실장이 관리형 내지 보좌역에 머물렀다면 이 실장은 시기적 측면에서 봐도 기존의 울타리를 벗어나 '정치' 화두가 중심이 될 향후 국정운영에서 영향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단행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 교체도 이 실장이 갖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특출한 판단력 등을 두루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이 실장은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정치적 궤적을 함께 한 이른바 '386'과 '부산파'와 같은 비주류 출신의 청와대내 여느 측근들과는 달리 DJ 집권 후 민주당으로 입문 했던 전문가 출신이다. 전남 장성 태생으로 80년 고려대 신방과를 졸업, KBS와 서울경제신문을 거쳐 한국일보 경제부장을 지냈고 DJ정부 들어 예금보험공사 이사로 재직하다 청와대에 들어가 국정홍보조사비서관과 국내언론2비서관을 역임했다. 노 대통령과는 2002년 대선과정에서 '실력'으로 연을 맺었다. 당시 당 정책위 상임부의장으로서 행정수도 건설공약 등 선거국면에 파괴력을 지닌 굵직한 정책공약 입안을 주도하면서 노 대통령의 눈에 들었던 것. 대선의 물줄기를 바꾼 이 실장의 전략적 감각은 정몽준씨와의 후보 단일화 기여 등 정무적 사안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 실장은 일찌감치 대선국면에 앞서 "차기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며 미래를 직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전략 마인드를 눈여겨봤던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만에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었던 이 실장을 홍보수석으로 승진시켰고, 그는 이후 강력한 추진력과 조정력으로 재신임 정국과 탄핵국면을 돌파해내며 핵심 참모로 자리매긋다. 총선 이후 노 대통령이 정무수석을 폐지한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를 잇는 통로로서 소리나지 않게 정무적 사안을 챙겨온 이 실장은 그러나 정치구조가 뒤바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과도한 업무에 따른 피로누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 2월 대통령 홍보문화특보로 물러났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신뢰도로 미뤄 그의 승진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임기 후반기에 대비해 노 대통령이 이 실장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준 셈이다. 실제 이 실장은 홍보문화특보로 있는 동안 사회각계의 다양한 인사들과 접촉을 통해 생생한 현장 여론을 취합해 노 대통령에게 자문과 조언 형식으로 이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노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목표로 잡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 챙기기"쪽에 집중한다면, 이 실장은 단기 현안들을 꼼꼼하게 챙기는데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실장을 보는 청와대 참모진의 시각도 노 대통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묵한 재사형 참모, 넓은 시야와 탁월한 판단력을 갖춘 전략가, 대화와 타협의 명수라는 데 인물평이 모아진다. 한 수석비서관은 "전략가지만 외유내강형으로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준다"고 평했고, 한 비서관은 "정무.정책 능력을 두루 갖추고 인간미에 조정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이강철(.시민사회), 문재인(.민정), 김완기(.인사), 김영주(.경제) 수석 등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수석들을 원만하게 이끌면서 비서실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도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집권 후반기를 맞아 단행한 노 대통령의 비서실장 교체도 이 실장이 갖고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와 특출한 판단력 등을 두루 감안했을 것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이 실장은 노 대통령과 오랫동안 정치적 궤적을 함께 한 이른바 '386'과 '부산파'와 같은 비주류 출신의 청와대내 여느 측근들과는 달리 DJ 집권 후 민주당으로 입문 했던 전문가 출신이다. 전남 장성 태생으로 80년 고려대 신방과를 졸업, KBS와 서울경제신문을 거쳐 한국일보 경제부장을 지냈고 DJ정부 들어 예금보험공사 이사로 재직하다 청와대에 들어가 국정홍보조사비서관과 국내언론2비서관을 역임했다. 노 대통령과는 2002년 대선과정에서 '실력'으로 연을 맺었다. 당시 당 정책위 상임부의장으로서 행정수도 건설공약 등 선거국면에 파괴력을 지닌 굵직한 정책공약 입안을 주도하면서 노 대통령의 눈에 들었던 것. 대선의 물줄기를 바꾼 이 실장의 전략적 감각은 정몽준씨와의 후보 단일화 기여 등 정무적 사안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 실장은 일찌감치 대선국면에 앞서 "차기 대통령은 노무현 밖에 없다"며 미래를 직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전략 마인드를 눈여겨봤던 노 대통령은 취임 6개월만에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었던 이 실장을 홍보수석으로 승진시켰고, 그는 이후 강력한 추진력과 조정력으로 재신임 정국과 탄핵국면을 돌파해내며 핵심 참모로 자리매긋다. 총선 이후 노 대통령이 정무수석을 폐지한 가운데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를 잇는 통로로서 소리나지 않게 정무적 사안을 챙겨온 이 실장은 그러나 정치구조가 뒤바뀌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과도한 업무에 따른 피로누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 2월 대통령 홍보문화특보로 물러났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신뢰도로 미뤄 그의 승진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전망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임기 후반기에 대비해 노 대통령이 이 실장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준 셈이다. 실제 이 실장은 홍보문화특보로 있는 동안 사회각계의 다양한 인사들과 접촉을 통해 생생한 현장 여론을 취합해 노 대통령에게 자문과 조언 형식으로 이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노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목표로 잡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과제 챙기기"쪽에 집중한다면, 이 실장은 단기 현안들을 꼼꼼하게 챙기는데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실장을 보는 청와대 참모진의 시각도 노 대통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묵한 재사형 참모, 넓은 시야와 탁월한 판단력을 갖춘 전략가, 대화와 타협의 명수라는 데 인물평이 모아진다. 한 수석비서관은 "전략가지만 외유내강형으로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준다"고 평했고, 한 비서관은 "정무.정책 능력을 두루 갖추고 인간미에 조정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이강철(.시민사회), 문재인(.민정), 김완기(.인사), 김영주(.경제) 수석 등 자신 보다 나이가 많은 수석들을 원만하게 이끌면서 비서실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도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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