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1 17:33
수정 : 2019.11.22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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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로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시작 전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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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친서 고맙지만 가야 할 이유 못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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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로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시작 전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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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1일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 (한국-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부산에 나가셔야 할 합당한 이유를 끝끝내 찾아내지 못한 데 대해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북쪽 <조선중앙통신>(중통)은 “5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이번 (한-아세안) 특별수뇌자(정상)회의에 참석해주실 것을 초청하는 친서를 보내왔다”며 이렇게 밝혔다. ▶관련기사 3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모친 별세에 즈음한 김 위원장의 조의문(10월30일)에 5일 답신을 보냈다”고 밝혔다. 고 대변인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이 참석할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의 공동 노력을 국제사회의 지지로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11월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차 한-아세안 정상회의 때 2019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한국(25~26일, 부산)에서 열기로 결정했고,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 부산 초청을 처음 제안했다.
<중통>은 “보내온 친서가 국무위원장에 대한 진정으로 되는 신뢰심과 곡진한 기대가 담긴 초청이라면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고 사의를 표했다. 이어 “북남관계를 풀기 위한 새 계기점과 여건을 만들어보려는 문 대통령의 고뇌와 번민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추세적으로 나빠지는 남북관계 현실에도 남북 정상 사이에 나름의 ‘신뢰 관계’가 유지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읽힌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의 부산 방문 문제는 북-미의 치열한 샅바싸움과 장기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북관계 탓에 일찌감치 ‘불발’ 전망이 높아져왔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불참 자체는 새삼스러운 소식이 아니다. 다만 정부는 부산 특별정상회의를 얼어붙은 남북관계 반전의 계기로 삼고자 여러 방안을 모색해왔다. 정부는 김 위원장의 부산 방문에 필요한 준비와 함께 특사 방남도 추진해왔다. 북한의 권력서열 2위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특사 방남을 비공개 창구로 북쪽에 타진해온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마저도 외면했다. “문 대통령의 친서가 온 후에도 몇 차례나 국무위원장께서 못 오신다면 특사라도 방문하게 해달라는 청을 보내온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는 <중통> 보도가 ‘특사 방남’ 요청에 대한 답인 셈이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부산 방문은 물론 특사 파견마저 수용하지 않은 사실과 관련해 <중통>은 “명백히 말하건대 무슨 일이나 잘되려면 때와 장소를 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곤 “지금이 북남 수뇌분들이 만날 때이겠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되물었다. 북쪽은 남과 북 사이에 정상회담 또는 특사 방남을 하기엔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근거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남조선 보수세력들”의 거센 ‘반북’ 목소리다. <중통>은 “흐려질 대로 흐려진 남조선의 공기는 북남관계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고 짚었다. 그러고는 “남조선의 보수세력들은 현 ‘정권’을 ‘친북정권이라 헐뜯어대고 ‘북남 합의 파기’를 떠들며 우리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 어느 때보다 열을 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의 ‘반북’ 분위기가 방남의 걸림돌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외세 의존”을 겨냥했다. <중통>은 “남조선 당국도 북남 사이에 제기되는 문제를 민족공조가 아닌 외세의존으로 풀어나가려는 그릇된 입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행정부·의회 주요 인사들과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협상 진전 방안을 논의하는 걸 “구걸 행각”이라고 비난했다.
셋째, “복잡한 국제회의 마당”도 문제삼았다. <중통>은 “다자협력의 마당에서 북남관계를 논의하자고 하니 의아할 따름”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귀퉁이에 북남관계를 슬쩍 끼워넣어보자는 불순한 기도를 무턱대고 따를 우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주인공이 아닌 여러 정상 중 한명 격인 방남은 사양한다는 얘기다. 사실 부산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아세안 정상들도 문 대통령의 김 위원장 초청 방침에 환영 일색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아세안 정상들로선 김 위원장 또는 김 위원장 특사의 부산 방문이 성사되면 한-아세안 협력 문제가 여론의 관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려한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이다.
<중통>은 이런 판단을 열거하고는 문 대통령의 김 위원장 부산 방문 초청을 “때와 장소”가 맞지 않는 “마른나무에 물대기”라 평했다. 그러고는 “판문점과 평양, 백두산에서 한 약속이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는 지금 형식뿐인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정상 합의부터 실행하라’는 주문이다. 아울러 “때와 장소”가 맞는 다른 기회를 찾아보자는 미루기인데, 그게 언제일지 기약이 없다. <중통>은 “(남쪽의) 척박한 정신적 토양에 자주적 결단이 언제 싹트고 자라나는가 지켜보는 수밖에”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방남은 지난해 9·19 평양정상회담 합의사항(“가까운 시일 안에 서울 방문”)인데,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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