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체제 상징 유엔사 논란
대통령도 장관도 DMZ 출입은 유엔사 허가 받아야
DMZ는 한국 주권이 미치지 않는 유엔사 관할 지역
한국 빠진 한국전 정전협정 당사자로 유엔사 참여
‘유엔사’가 유엔 통제 받은 유엔의 군대인지 이견
“유엔사는 안보리가 설립한 유엔 산하 보조기관”
이장희 교수 “유엔과 무관한 미국 주도 다국적군”
유엔사 역할 확대 움직임 한국 주권 충돌 잦아
한반도문제 당사자 한국 입지 발언권 확보해야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한겨레교육, 녹색연합은 지난 9월 20대를 대상으로 ‘DMZ 평화적 이용’ 교육프로그램을 꾸렸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협력 논의에 청년층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한겨레평화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DMZ 평화적 이용과 관련해, 사람(군인)·생태관광·정전체제(유엔사) 3가지 주제로 기사를 준비했다. 편집자 주
지난 8월9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비무장지대(DMZ)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마을을 방문하려 했지만 유엔사령부(유엔사)가 동행 취재진의 방문을 불허했다. 김연철 장관은 결국 대성동마을 방문을 포기했다.
앞서 지난 6월10일 경제·에너지부 차관을 포함한 독일 대표단이 통일 경험을 전해주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했다. 통일부는 6월11일 독일 대표단이 강원도 고성 ‘829 보존 지피’를 둘러보는 일정을 준비했다. 829 보존 지피는 DMZ 남북 군사 대치의 증거인 감시초소(GP)를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철거한 사실을 기념하려고 영구 보존하기로 한 곳이다.
하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유엔사가 안전상의 이유로 DMZ 통과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유엔사는 어떤 안전상의 이유가 있는지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유엔사의 불허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엔 한국 정부가 북한쪽 경의선 철도 조사를 위해 군사분계선 통과를 신청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출발 48시간 전에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불허 때문에 4·27 남북정상회담의 주요 합의 사항이었던 경의선, 동해선 철도 현대화 사업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뒤 6·15선언에서 합의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2년 남북 도로철도 연결 구간 지뢰제거작업을 상호검증하는 남북조사단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앞두고 유엔사는 한국군에게 유엔사 승인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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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철원 비무장지대 근처 표지판에는 ‘비무장지대는 유엔사 관할’이라고 적혀 있다. 비무장지대 관할권은 유엔사에, 관리권은 한국군에 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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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8년 이후 DMZ 출입신청 2220여건 가운데 93%가 승인이 났다. 이를 근거로 ‘유엔사는 대한민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왜 군사분계선 남쪽 DMZ에 들어갈 때 유엔사가 허가가 필요한 것인가?
DMZ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유엔사 관할 지역이다. 유엔사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통과·출입 허가권을 갖고 있다. 정전협정은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군인이나 민간인이 군사분계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군인이나 민간인이 DMZ에 출입하려면 해당 지역사령관(유엔군사령관)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엔사의 허락이 없으면 대통령도 국방장관도 합참의장도 DMZ에 들어갈 수 없다. 실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하러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하러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남쪽 인사들의 명단과 군사분계선 출입에 대한 정부의 계획 등을 유엔사에 전달했고, 유엔사가 노무현 대통령과 김장수 국방장관 등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인사 명단에 허가 서명을 한 뒤 이를 다시 우리 정부에 통고하는 절차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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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2일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걸어서 군사분계선(노란색 표시)을 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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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의 물리적 현장 관리는 국군이 하지만 출입하는 모든 인원과 병력에 대한 통제권은 유엔사 소관이다. DMZ 관할권은 유엔사에게, 관리권은 한국군에게 있다. 이는 1953년 7월27일 맺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유엔사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정전협정문을 보면 북한과 중국, 유엔은 있지만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왜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을까? 이승만 정부가 휴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 국가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괴뢰집단’ 북한과 협상테이블에 앉아 협정을 체결할 수는 없었다.
1953년 7월27일 이후 한반도는 휴전(협정)체제 또는 정전(협정)체제에 들어갔다. 정전협정 유지·관리는 유엔사의 평상시 주 임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9월19일 기자들과 만나 유엔사 역할과 관련해 “유엔사 관련 문건을 보면 (유엔사는) 'the keeper of the Armistice(정전협정의 수호자)'라고 써 있다”고 말했다.
유엔사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창설돼 1957년 7월 서울 용산기지로 옮겨온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유엔사의 정확한 명칭은 유엔군 사령부(UNC: United Nations Command)다. 미국 육군 대장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을 맡고 있는데 그는 한미연합사 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관을 함께 맡고 있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렸던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이·취임식 때는 신임 사령관이 지휘깃발(지휘기) 3개를 넘겨받아왔다. 넘겨받는 순서는 통상 한미연합사, 유엔사, 주한미군사령부 순서였다. 이 순서는 무게와 권한 순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반도 유사시 국군과 미군 63만명의 전시작전권을 행사한다. 유엔사령관은 정전체제 관리가 주 임무이고, 주한미군사령관은 2만8천여명의 주한미군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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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30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열린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취임식에서 유엔사, 한미연합사, 주한미군 깃발이 함께 입장하고 있다. 이날 빈센트 브룩스 대장은 유엔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이 됐다. 한미연합사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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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토대로 설립되고 유엔기 아래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엔사의 법적 성격을 놓고 이견이 있어왔다. 논란은 크게 △유엔의 산하조직인 공식군사기구인가 △유엔이 승인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인가 △유엔과 전혀 무관한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인가 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엔사를 유엔의 군대로 알고 있다. ‘1950년 북한 남침에 대한 유엔의 국제적 대응 조치로써 한국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한 국제적 지원을 담보로 제공받고 있는 국제안보체제의 성격을 가진 군사안보기구’(‘전시작통권 전환 이후 유엔군사령부의 위상과 역할’ 정철호 <세종정책연구> 2010년 제6권 2호)라는 것이다.
국내 학자들 사이에서는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에 의해 설립된 유엔의 보조기구란 의견이 주류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의 군대는 유엔군이며 그 통합사령부는 유엔의 산하 기관이고. 법적 주체는 유엔이란 것이다.
1950년 7월7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는 한국을 도와 참전한 16개국을 지휘할 통합사령부를 구성하고 미국으로 하여금 사령관을 임명케 해 지휘체계를 통일시켰다. 트루만 미국 대통령은 7월8일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7월14일 서한을 통해 작전 지휘권을 유엔군 사령부에 위임했다. 7월7일 세번째 안보리 결의는 미국 주도하의 통합사령부가 재량에 의해 작전 시 참전국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권위를 부여했다. 유엔사는 한국군과 참전 16개국 군을 지휘했고 휴전협정도 이들 국가들을 대표해 교섭에 참가하고 서명했다.
이와 달리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유엔사가 그 이름과 달리 유엔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유엔사는 유엔에 보고하지 않으며 유엔도 유엔사에 지시하거나 예산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장희 교수는 유엔사라고 불리는 조직은 굳이 말한다면 유엔군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라고 주장했다.
유엔의 지지를 받는 다국적군과 유엔의 군대를 구분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엔사는 유엔에 의해 공식적으로 부여된 명칭은 아니다. 유엔이 제시한 이름은 미국 지휘하의 통합사령부(United Command)이다. 이것을 미국이 임의로 유엔사라고 칭하였고 이후 유엔 차원에서도 관행적으로 수용되어 왔을 뿐이다.”(주한 유엔군 사령부의 법적 성격’ 정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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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최전방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에 푸른색의 유엔기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유엔기는 지피가 유엔사의 시설이고 관할구역임을 뜻한다. 비무장지대의 물리적 현장 관리는 국군이 하지만 출입하는 모든 인원과 병력 통제권은 유엔사가 행사하고 있다. 육군본부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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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설명도 분명하지 않다. 1995년 북한이 유엔에 유엔사의 소환을 요구했을 때에도, 당시 유엔사무총장 부트로스 갈리는 ‘유엔사는 유엔의 보조기관이 아니며 유엔사의 해산문제는 유엔의 책임이 아니라 미국정부의 권한 내에 있는 문제다’ 라는 답변을 보냈다. 1975년 제30차 유엔총회에서 공산진영이 제출한 유엔군사령부의 조건 없는 즉각 해체 결의안이 자유주의 진영의 남북대화의 계속 촉구 결의안과 함께 동시 통과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유엔사의 국제법 지위가 계속 논란이 됐다. 이 논란을 의식해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됐고 한국군 작전통제권이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위임됐다.
2019년 9월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의장 마이어는 세계 47개 단체와 함께 구테레스 유엔사무총장에게 ‘유엔군사령부의 한국과 일본에서의 유엔기사용에 대한 사무총장의 입장’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발송했다. 질의서의 핵심내용은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의 기구에 사용하고 있는 유엔기사용이 유엔헌장, 유엔총회결의, 유엔깃발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유엔기 사용승인 권한을 가진 사무총장이 유엔기사용금지결정을 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지난 10월10일 유엔 사무국은 “유엔기 사용금지 결정 권한이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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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27일 유엔군사령부는 한국전쟁 때 전사해 북한에 남은 미군 유해 55구를 북한에서 찾아왔다. 미 공군 C-17 수송기가 북한에 들어가 이날 미군 전사자 유해들을 한국 오산 미군 기지로 실어왔다. 미군 유해들이 미국 국기가 아니라 유엔기에 쌓여 있고, 미군 수송기 안에는 성조기와 유엔기와 함께 걸려 있다. 유해는 미국으로 옮겨졌다. 유엔기는 한국전쟁과 유엔의 관계에 대한 미국의 시각을 보여준다. 주한미군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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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엔사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가지 측면이다.
첫째는 지난해 3차례 남북정상회담 뒤 높아진 남북교류협력, 군사적 신뢰구축 움직임을 미국(유엔사)이 DMZ 관할권을 내세워 통제·조절하는게 아니냐는 논란이다. 남북관계 진전에 미국이 속도조절하고 개입하는 수단으로 유엔사가 작동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올들어 몇차례 유엔사의 DMZ관할권이 한국의 주권과 충돌하면서 이런 문제의식은 더욱 커졌다.
몇년전부터 미국은 유엔사의 조직·인력·기능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2014년부터 유엔사 재활성화에 따라 유엔사 근무자가 30~40명에서 2~3배 가량 늘어났다. 주한미군 참모장과 유엔사 참모장을 겸직하다 지난해 8월 미 육군 소장이 유엔사 참모장에 별도로 임명했다. 미국이 한국군에게 전작권을 이양한 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을 통제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경우라면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찾아와도 빈껍데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50년 일어나 1953년 종료된 한국전쟁은 2019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최근 유엔사 관련 문제들도 결국 정전체제에서 파생된 것이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의 봄 기운이 북-미 협상이 교착되면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황원지 이나경 교육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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